쓸데없는 소리, 쓸데없이 그런 일을 하다니…. 익숙한 표현들로 붙여 적는 것이 올바른 표기다. 그런데 ‘쓸 데 없다’로 띄어 쓰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물론 뜻은 달라진다. 어떻게, 왜 달라질까?
이 문제를 풀려면 이 단어를 좀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단어는 ‘쓰+ㄹ+데+없다’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쓸’은 기본형 ‘쓰다’의 ‘쓰-’에 ‘-ㄹ’이 붙은 말이므로 구분한 것이다. 그러면 기본형 ‘쓰다’의 의미는 뭘까? 간단치 않다. 국어에는 ‘쓰다’가 여러 개 있다.
① 글자를 쓰다 ② 모자를 쓰다 ③ 맛이 쓰다 ④ 도구나 수단을 쓰다(이용하다)
①∼④의 ‘쓰다’는 동음이의어다.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다른 말인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나와야 한다. 단어 ‘쓸데없다’ 안의 ‘쓰다’는 ①∼④ 모두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일단 ④의 ‘쓰다’의 의미인 경우는 붙여 적는다. 단어의 의미 속에 이유가 있다.
우리는 ‘소용없다, 불필요하다’라 말하고 싶을 때 ‘쓸데없다’를 쓴다. 그 의미가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니까. 한자어로 표현한다면 ‘유용하지 않다’는 의미다. ‘유용’이라는 단어 안의 ‘용(用)’은 ④의 ‘쓰다’의 의미에 포함된 ‘이용, 소용’의 ‘용(用)’과 통한다. 이런 의미로 쓰이는 ‘쓸데없다’가 관용구로 굳어져 붙여 적는 것이다.
그러면 띄어 적는 ‘쓸 데 없다’의 예를 보자. 우리가 상대적으로 자주 만나는 ‘쓸 데 없다’는 ①의 의미일 때다. 예를 보자.
―한 줄도 더 쓸 데 없이 빽빽하게 적었다. ―더 이상 쓸 데 없이 꽉 차게 판서를 했다.
이 예문의 ‘데’는 모두 ‘곳’이나 ‘부분’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데’의 의미가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④의 ‘쓰다’도 ‘데’의 의미가 분명히 구분된다면 띄어 쓸 수 있는가? 멋진 질문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④의 의미라도 명확히 ‘쓸 곳이 없다’일 때는 띄어 적어야 한다.
결국 이 ‘쓸데없다’를 띄어 적을지 말지의 문제는 이들이 합쳐져 하나의 단어가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문제다. ‘데’가 ‘곳’이나 ‘부분’의 의미를 가졌는지를 확인한 것은 ‘쓰+ㄹ+데+없다’가 합쳐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쓸데없다’가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는 것과 관련된 다른 문제를 보자. 아래 예문은 올바른 문장일까?
―그래봐야 아무 쓸데없다.(×)
컴퓨터의 맞춤법 검사조차 이 문장의 오류를 잡아내질 못한다. 어디가 왜 틀린 것일까? ‘아무’가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아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아무 데나 앉아라.
‘아무’는 원래 ‘명사’를 꾸미는 말이어서 ‘아무 데’처럼 꾸며줄 명사와 함께 나타나야 한다. 여기서 ‘아무 쓸데없다’가 틀린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무’가 꾸며줄 명사가 없질 않은가. ‘쓸데없다’에 들어 있는 ‘데’를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데’는 다른 것과 합쳐져 더 이상 명사가 아닌 새로운 것이 되어버렸다. 합쳐져 새로운 단어가 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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