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모어(母語)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고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 시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침묵의 미래’ 가운데 일부다. 호흡이자 생각이고 문신인 우리말을 글로 쓰고 읽을 수 있게 된 지 올해로 571년이 되었다.
한글로 쓴 가장 오래된 책이자 최초의 한글 문학작품은 ‘용비어천가’(1447년)다. 최초의 한글 활자본은 세종대왕이 지은 찬불가 ‘월인천강지곡’(1449년)이다. 한글로 표기된 첫 소설은 채수(1449∼1515)가 1511년경에 쓴 ‘설공찬전’이다. 원본은 한문이었으나 한글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처음부터 한글로 쓴 첫 소설은 17세기 초 허균의 ‘홍길동전’이다.
1894년 11월 고종의 칙령에서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으로 기본을 삼되, 한문 번역을 덧붙이거나 국문과 한문을 혼용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한글은 공식적으로 ‘국가의 문자’가 되었다. 이 칙령에 따라 한글로 쓴 첫 공문서는 1895년 1월 고종이 발표한 개혁강령인 ‘홍범 14조’다. 한글로만 쓴 최초의 우리말 연구서이자 문법서는 이봉운의 ‘국문정리’(1897년)다. ‘판권 소유’ 개념을 도입하여 명시한 첫 책이기 때문에 근대 출판역사에서도 중요하다.
최초의 한글 기독교 성서는 선교사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 한국인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등이 번역에 참여하여 1882년 3월 중국에서 간행된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다. 외국인이 한글 문학 텍스트를 단독으로 번역하여 펴낸 첫 책은,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김만중의 ‘구운몽’을 번역한 ‘The Cloud Dream Of The Nine’(1922년)이다. 최초의 외국 문학 한글 번역서는 역시 게일이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번역하여 1895년에 펴낸 책이다.
최초의 순 한글 신문은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이다. 훈민정음 반포의 의미가 그 창간호 논설에까지 이어졌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 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조선 국문이 한문보다 나은 것은 첫째는 배우기가 쉬우니 좋은 글이요, 둘째는 조선 인민들이 모든 일을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 귀천이 모두 알아보기 쉬울 터이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