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전후해 온라인 공간에는 전통시장을 둘러싼 기사가 많이 올랐다. 연중 최대의 대목에도 어렵다는 전통시장 상인의 한숨이나 대형마트 규제를 강화해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정치인의 주장에 비아냥대는 댓글이 수백, 수천 개씩 달렸다. 원래 기사에 대한 댓글에는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의 어려움을 전하는 기사에는 이례적으로 부정적인 댓글이 다수였다. 신용카드 사용이 어렵고, 포인트 적립은 물론이고 온라인 주문도 안 된다고 비판하는 젊은 소비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유독 많았다.
올해는 좀 다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강조하면서 대형유통업체 영업규제를 강화하는 현 정부를 탄생시킨 이른바 ‘젊은 촛불세대’가 전통시장을 과거보다는 한 번쯤 더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구매력이 큰 젊은층이 전통시장을 찾으면 30만 명에 이르는 전통시장 상인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서민경제가 살아나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 전통시장 상인들은 추석 매출이 매년 가파르게 떨어지는 현상이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반면 대형유통업체들의 매출은 최대 20∼30%까지 늘었고 복합쇼핑몰은 인파로 넘쳐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번 추석연휴 특별수송대책기간(9월 29일∼10월 9일)에 공항 이용객은 일평균 18만7000여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던 사람들이 해외에서 엄청나게 소비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소비한 금액(해외 직접구매 제외)은 30조 원이 넘었다. 국내 소비자가 국내 대형 유통기업과 해외 상가의 매출만 올려준 셈이다.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 내수 활성화와 서민경제 살리기에 나선 정부에 돌아온 떨떠름한 성적표다. 지난 열흘간의 추석연휴는 임금을 인상해 소비자의 지갑을 두둑이 해줘도 소비자들이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지갑을 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주도 성장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는 당장 규제의 칼을 빼들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해외여행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영업 및 입점 규제는 가능하다. 대형마트에 적용했던 영업 및 입지규제를 새롭게 생겨나는 복합쇼핑몰에도 적용하겠다는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 정부를 지지하는 젊은층 역시 소비자다. 이들은 “대형마트가 오늘 안 열면 내일 가든지, 급하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겠다”고 말한다. 전통시장의 일부 상인들조차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 매출이 하락하면 전통시장 상인은 반사이익을 누리기는커녕 위안만 받는다”고 자조한다.
전통시장을 방치하자는 뜻이 아니다. 소비자의 자연스러운 소비패턴을 억누르는 규제 대신 전통시장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전통시장이 정부 지원과 대형마트 규제로 생존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접을 때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이미 문화관광형시장, 글로벌명품시장은 물론이고 전통시장 내 청년상인들의 성공사례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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