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벽지 학교들을 취재했다. 도시와 농촌 간 임용 양극화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한 ‘임용 양극화-지방학교가 위태롭다’ 시리즈를 보도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을 돌아보며 교사 임용 문제보다 더 큰 숙제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어느 도시보다 학교가 꼭 필요하지만 학교 자체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된 도서산간 지역 학교의 생존 문제다.
도서산간 현장에 가보면 이곳만큼 학교가 절실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학업을 학원이나 과외, 학습지에 의존하는 도시와 달리 벽지에선 오직 학교만이 교육을 담당할 수 있다. 가정환경이나 경제사정이 어려운 아이도 많아 학교의 역할은 더욱 크다.
방문했던 벽지 학교들의 경우 특히 다문화가정 비율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전교생 수가 26명인 산간지역 A초교는 전교생의 반이 다문화가정 자녀였다. 특히 올해 1학년 아이들은 7명 중 5명이 다문화가정이라고 했다. 이 학교 엄마들의 출신 국적은 6개국에 이른다.
벽지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엄마도 한국말이 서툴다보니 학교에 입학할 때 한글이나 수 개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 자체가 힘들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섬 지역 B학교 교사들은 아이들 한명 한명을 끼다시피 하며 대화법부터 한글, 수 개념까지 일일이 깨우쳐주고 있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벽지에는 한부모가정 또는 조손가정 아이들도 놀랄 만큼 많다. 외국에서 온 엄마가 떠나버리거나, 아빠가 떠난 아이, 부모가 병으로 돌아가신 경우 등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어떤 반은 5명 중 2명만 ‘두 부모 가정’일 정도였다. 섬 지역의 한 교사는 “생업이 힘든 부모가 많다보니 어떨 땐 법정전염병에 걸린 아이를 그냥 등교시키기도 한다”며 “그럴 땐 교사가 출장계를 낸 뒤 아이와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치료를 받고 온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교사를 넘어 엄마이자 아빠였다.
만약 이 아이들에게 학교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젊은층의 농촌 이탈에 저출산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이미 수많은 학교가 폐교됐고 폐교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가성비’만을 따지면 정부가 벽지 학교들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취재 중 방문한 C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해 전교생이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사 인건비와 행정직원 비용, 교육비, 시설관리비 등에 연간 10억 원 가까이 들어간다고 했다. 7명의 학생을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쓰는 게 맞을까. 난제 중의 난제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교를 폐교시키면 정부에서 60억 원의 지원금을 주고 인사상 가점도 준다”며 “하지만 이 안에 학교가 전부인 아이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나라 땅 끝과 산 속에서 살아가는 마지막 세대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듯한 기분에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가 없는 마을엔 젊은이가 들어오지 않는다. 폐교가 지역의 미래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이유다. 10년 뒤 학교가 사라진 한국의 곳곳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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