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라는 말이 한국에서 처음부터 이미지가 좋았던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다문화’ 하면 가장 먼저 국제결혼, 빈민, 취약계층, 불통(不通) 등의 단어를 떠올렸다. 필자는 결혼이주여성이 아닌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지만 현재는 결혼이민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이들은 내가 결혼이민자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남편의 나이부터 궁금해한다. 다문화가정의 남편은 나이가 많으며 취약계층이란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내가 선진국 출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남편이 명문대를 나왔거나 능력이 있을 거라고 예측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정부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2009년 다문화기본계획 1차, 2차 계획을 진행했으며 내년 1월부터 3차 계획이 공개, 실행될 예정이다. 일부는 이미 공개됐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농촌 총각의 국제결혼 지원사업은 사실상 외국인 여성에 대한 매매혼이나 다름없다며 중단하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현재(6일 기준) 1만3370명이 참여했다.
청원 내용을 보고 분노가 솟구쳤다. 한쪽에서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노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인구를 늘린다며 일부 지자체가 농촌 총각의 결혼을 지원하는데, 지원금 한도는 300만∼600만 원 정도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부정적 방향으로 흐를 소지가 크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국민의 결혼비용을 동등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간 평등과 차별에 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남성의 생활력과 심리 등 자격요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이따금 나이 차가 크게 나거나 외적·내적 장애가 있을 시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 오자마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한국에 온 여성들은 남편의 신상을 모른 채 결혼했다고 한다. 거짓 정보를 주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 걸러낼 예방 제도가 분명 필요하다.
셋째, 이주여성인권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서울지역 총 2만3772건, 대구지역 3988여 건의 상담내용 중 이혼과 법률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은 가정폭력과 갈등이었다. 두 지역에서 들어온 상담 건수가 이 정도인데 실제 전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주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문제가 생길 경우 도움을 청할 방법조차 몰랐다.
이혼은 현재 사회에서 흔해진 일이긴 하나 가정에서 이뤄진 폭행은 일반 한국 가정보다 다문화가정에서 일어나는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여성은 남편뿐 아니라 시부모와 한국 가족 내에서 당하는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일 결혼이주여성이 이혼을 선택할 경우 자녀는 물론이고 한국 땅에서 생활할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매매혼과 다름없는 국제결혼을 지원하는 사업을 계속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다문화가정을 위해 들인 노력과 공이 헛되지 않도록 슬기로운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필자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거주할 사람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 특히 다문화사회가 발전해야 다문화가정 2세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생활환경도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자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게 됐다. 함께 노력하고 함께 생각하고 편견 없이 어울려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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