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중국發 살기와 금강산 건봉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3시 00분


금강산 건봉사의 능파교(가운데 다리)와 봉서루(오른쪽).
금강산 건봉사의 능파교(가운데 다리)와 봉서루(오른쪽).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휴전선을 눈앞에 둔 우리나라 최북단의 전통사찰 건봉사(乾鳳寺·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금강산 본줄기에 위치한 사찰이다. 풍수적 입지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중국 북방에서 몰아쳐오는 대륙의 살기(殺氣)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폭력 기운이 원산을 거쳐 금강산을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건봉사는 역사적으로 북방의 살기를 감당해내느라 병란(兵亂)과 화마(火魔)라는 대가를 여러 차례 치렀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몸살을 앓던 19세기 중반, 그 살기는 조선으로도 뻗쳤다. 이를 터의 기운으로 막아내던 건봉사는 1878년 건물 3000여 칸이 전소되는 산불로 희생을 치렀다.

1950년대 중국군이 개입한 6·25전쟁 시기에는 전쟁의 살기를 버텨내다가 결국 사찰이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지금의 건봉사 전각은 그 이후에 중건한 것이다.


사실 대륙의 살기와 관련한 건봉사의 독특한 입지는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1500여 년 전인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520년)한 이래, 이 절은 신라 말 한국 풍수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도선국사에 의해 서봉사(西鳳寺)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고려 말인 1358년 나옹 스님이 중건하면서는 건봉사로 개칭했다. 모두 기운을 읽고 조절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춘 도승(道僧)들이 사찰의 역사에 개입한 것이다.

건봉사 서쪽에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어 서봉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건봉사 주변에서 봉황형 바위는 발견된 바 없다. 오히려 한반도 서북쪽(주역 8괘로는 건·乾 방위)의 살기를 막는 봉황(鳳凰)의 터여서 ‘건봉’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해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봉황은 전쟁이나 살기를 막아주는 전설의 영물로, 태평성대와 성인의 출현을 상징한다. 실제로 건봉사 터는 역사의 비극과는 달리 매우 부드럽고 유려한 산세에다, 지기 또한 세상을 보듬는 듯한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명당지다. 형세파 풍수에서 말하는 봉황포란(鳳凰抱卵)형이라고나 할까.

터로 나라의 명운을 살펴보는 행위는 풍수의 망기술(望氣術)에 해당한다. 원래 망기술은 하늘의 별·해와 달·구름·바람 등 천문 현상에서 기운의 조짐을 살펴 인간사의 길흉을 판별하는 기법인데 이에 능한 이들은 터에서 발산하는 기운까지도 구체적으로 감별하거나 구별해낸다.

이를테면 터에서 나타나는 기운의 색이 밝고 환하면 그 주인이 잘 풀려 나가고, 어둡고 칙칙하면 패퇴하게 되고, 밝고 붉은색을 띠면 거부가 되고, 검은색이면 재난과 화를 부르고, 자줏빛이면 대귀(大貴)하게 된다는 식이다. 겸애주의로 유명한 ‘묵자’는 “망기술로 대장기(大將氣)와 소장기(小將氣) 등 여러 종류의 기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과 실패, 길과 흉을 능히 알 수 있다”고 썼다.

정유재란기인 1598년 노량해전을 앞두고 명나라 장군 진린이 “동방의 장군별(將星)이 시들해져서 화액이 공(이순신)에게 머잖아 미칠 것”이라며 이순신에게 각별히 주의를 당부한 것도 이런 망기술에 의한 것이다. 진린은 천문과 풍수에 두루 밝았던 두사충을 참모격인 비장(裨將)으로 두고 있었다. 이순신도 두사충에게 시를 지어 보낼 정도로 그를 존중했다.

임진, 정유 양 왜란을 직접 겪은 선조도 중국의 이런 망기술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무릇 지리술이란 반드시 위로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겸하여 망기(望氣)에도 능한 다음에라야 지맥(地脈)의 묘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에 능한 자가 있겠는가.”

망기술을 잘 활용하면 개인사뿐 아니라 나라의 국운을 살펴 재액을 예방하거나 대비할 수 있음이 여러 고전에서 나타난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재신(梓愼)은 천문 현상을 감지하는 망기술로 “송나라에 난이 일어나 나라가 거의 망했다가 3년 뒤에 해소되며, 채나라에서는 대상(大喪)이 있을 것”이라고 해 적중했다.(‘춘추좌씨전’)

아무튼 건봉사는 그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에서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僧兵)을 일으킨 호국의 본거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의 활동 근거지로 명성을 떨쳐왔다.

그 건봉사의 옛 사지(寺址)에서 최근 봉황 형상의 밝은 기운을 ‘망기’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환자의 안색을 살펴 병을 진단하는 망색술(望色術)의 전문가(중의사)가 추석 명절에 건봉사에 들렀다가 감지했다는 거다. 중국과 북한의 살기가 중중한 이때, 그가 망기한 대로 평화의 봉황 기운이 흘러나와 우리 국운에 도움이 되길 진정으로 기다려본다.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금강산 건봉사#우리나라 최북단 전통사찰 건봉사#봉황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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