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후 8시 서울 이화여대 앞 골목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독립서점.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도 20명 남짓한 이들이 간이의자까지 펴고 빼곡히 앉았다. 이 자리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위한 자발적 모임이었다. 내년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의원에 직접 도전해 보려는 보통 사람들의 모의라고 할까. 행사명도 발랄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테마곡 ‘나야 나’를 패러디해 ‘오늘 밤 구의원은 나야 나’로 지었다. 그들이 바꿔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우리가 직접 우리 동네부터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프로젝트는 이 책방의 주인장인 김종현 씨(34)의 아이디어다. 노파심에 먼저 밝히면 그는 이른바 ‘멀쩡한’ 청년이다.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았고,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김 씨는 “촛불집회를 거친 20, 30대가 이번 대선 때 ‘투표에 참여하자’는 인식이 강했다”면서 “하지만 ‘왜 우리는 투표만 해야 하지? 직접 출마할 수도 있잖아’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의문은 가장 작은 단위의 선출직인 구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해 보자는 생각으로 귀결됐다. 동네 가로등 불이 안 들어오거나 쓰레기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도 모두들 ‘대통령 탓’만 하는 것도 문제 같았다고 한다. 생활에서 겪는 불편의 상당 부분은 구에서 해결할 수 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며칠 뒤 책방에서는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한 30대 여성이 “서울에 구의원이 413명이나 되는데 나를 대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운을 뗐다. 다른 이가 “육아로 힘든 엄마,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성소수자, 작업 공간을 못 찾는 예술가 등이 각각 대표성을 갖고 출마해 작은 단위에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일베’(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이 동참하겠다고 하면 어쩌느냐”는 문제 제기에 잠깐 논쟁도 일었다. 그러다 “벽을 둬선 안 된다.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라는 한 참석자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김 씨는 “출마하려면 지인에게 밥을 사거나 얻어먹는 일도 조심해야 하더라”며 공직선거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기성 정당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물었다. “정당의 지방선거학교나 청년아카데미에 참여하면 더 수월할 텐데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한창 정치지망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진행 중이거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어서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성 정당에 장식품이 되기도, 확성기 유세 같은 선거 방식도 싫다는 얘기였다. 다소 오해가 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의도의 ‘책사’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겨울 촛불정국에 대해 국민들이 ‘정치적 각성’을 하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내가 나라의 주인이었구나. 내가 나서면 나라가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각성 말이다. 대선 이후 5개월, 국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의 각성을 수렴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집권여당과 보수야당이 악다구니하지만 정치 풍토에서는 도긴개긴이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같이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을 찾는 목소리가 유럽의 ‘새 정치’ 물결처럼 번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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