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사실 미래는 이미 와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3시 00분


기술혁명 세상에 대한 예측들… 프리드먼 ‘평균의 시대 끝났다’
유발 하라리 ‘모든 것은 변한다’
정부는 ‘정규직 국가’ 지향하나 일자리 절반은 AI로 대체 가능
리더의 선택, 투쟁이냐 학습이냐… 기득권 노조의 미래를 가르다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세계화 디지털화 로봇화의 시대, 어떻게 인류가 적응해야 하는가를 내다본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새 책을 읽다 뜬금없이 대중가요가 생각났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한국인을 사로잡았던 노래다. ‘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시절에는 기술혁신도 유능한 블루칼라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하지 않았으나, 일단 변화에 가속도가 붙으면 고임금 중기술직의 일자리는 더 이상 찾기 힘들 것이다.’ 이 대목에서 노랫말이 연상됐나 보다.

‘평균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프리드먼은 신작 ‘늦어서 고마워’에서 단언한다. 평범하게 자기 일 해내고 규칙대로 행동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란 생각과 작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다. 강한 노조를 통해 평균적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임금인상과 근로복지의 혜택을 받아낸 것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고, 장차 평생 직업을 가지려면 평생학습을 할 각오가 필요하다고.

퓰리처상을 3차례 받은 프리드먼이 지목한 미래의 방향은 지금 한국 사회의 선택과 어긋난다. 우리는 정규직을 국가적으로 떠받들지만 그는 유연성과 자율성을 새로운 근로형태의 장점으로 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상출근-일반업무-평균적 생활수준’을 보장한 확정급여형 세상이 가능했으나 이제 아니란 것이다.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이 적어도 100만 개가 있다는 것을 고민할 때가 왔다”는 의미다. 아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국내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나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직업군’에 속한다는 분석이 올해 5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나왔다.

AI시대는 기회인가 재앙인가. 전망이 엇갈린다. 3년 후 AI로 일자리 230만 개가 창출되고 180만 개가 소멸된다고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이달 12일 분석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가져올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웠던 것처럼 2025년 이후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13일 다보스포럼과 KAIST가 개최한 4차 산업혁명 원탁회의에서 두산그룹 최고기술책임자는 기업에서 보는 가장 큰 제약을 인재 부족, 노동조합의 반대, 정부의 무관심을 들었다. 이 회사가 제조업과 4차 산업혁명 접목 과정에서 생기는 인력 감소를 국가 단위로 적용하니 대략 400만 명의 단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는 계산도 나왔다. 이들이 고부가가치 기술자로 전환할 방법을 못 찾으면 국가적 실업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 목전에 닥쳤다.

프리드먼이 언론인 시선에서 변화를 취재한 반면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인류 앞날의 변화를 전망한 역저. 전 세계가 고민에 빠진 노동의 미래는 여기서도 부각된다. 그 핵심은 변화와 적응으로 수렴된다. 그는 말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본래 두렵다.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상 유일한 불변의 법칙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불교사상과 동양철학 주역의 원리와 닮았다. ‘오래된 미래’가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것인가.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길은 학습이다. 하라리는 지식을 세계 3대 자원의 하나로 꼽으며 지식은 사용할수록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미래는 이미 당도해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결국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벌써 여기 와 있다는 말이다. 내 일자리가 위태롭고 언제 자식 세대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 경영진은 물론 노동조합이 다가올 시대를 충분히 인지하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이유다. 거대한 쓰나미가 쓸고 간 자리에는 단체협상 벌일 건더기조차 없을 테니 운명공동체로 힘을 합쳐야 생존의 길도 열릴 것이다.

노동운동이 달라져야 한다. 투쟁하는 노조인가 학습하는 노조인가, 그 나침판부터 새로 정하고 노조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해야 할 때다. 특히 조직화한 상위 10% 노동자를 이끄는 리더라면 선택의 갈림길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하라리에 따르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 이제 노조의 리더는 혁신가여야 할 것이다.

뻔한 미래를 남의 일로 외면한 채 노조가 오답을 우기면 마침내 AI시대가 노조원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경각심이 노동운동의 상위계급에 있어야 할 것이다. 해마다 회사에 배짱 좋게 청구서를 내민 노조를 향해 더 무서운 청구서가 성큼 다가오는 중인지 모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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