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교, 부산항대교, 이순신대교, 광안대교….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사장교(斜張橋) 현수교(懸垂橋)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제 케이블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광안대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산 수영구 망미동. 이곳엔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 있다. 고려제강은 교량용 철제 케이블을 비롯해 다양한 와이어를 만드는 세계 굴지의 기업. 여기에선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다. 이 공장이 지난해 공연장 전시장 카페 서점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F1963’이라 부른다. 1963은 공장을 지은 해이고 F는 공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 Factory에서 따왔다.
F1963은 곳곳이 매력적이다. 옛 와이어공장 건물의 형태와 뼈대를 유지해 그 흔적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 가장 인상적인 곳은 카페와 중고서점이다. 특히 높고 웅장한 천장이 압권이다. 와이어 공장답게 천장을 가로지르는 무수히 많은 철제 빔. 그 빔들이 겹치고 얽혀 장관을 연출한다. 실제로 와이어 공장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카페 여기저기엔 와이어를 감아놓는 보빈이 흩어져 있다. 지름이 1.5m가 넘는 것부터 자그마한 것까지. 이 보빈을 테이블로 또는 장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에겐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공장에서 사용하던 녹슨 철판을 테이블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중간중간 벽체의 기둥도 철거하다 만 채로 살려두었다. 중고서점엔 옛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실링인쇄기, 오프셋인쇄기 같은 옛날 인쇄기도 전시해 놓았다.
F1963은 국내에서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생활공간 가운데 본래의 흔적을 가장 적극적으로 살린 곳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어느새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 평일에도 카페엔 남녀노소 사람들로 가득하고, 중고서점엔 기념품과 책을 사려는 청소년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모두 공장의 흔적에 매료된 것이다.
이 공장은 1945년 창립한 고려제강이 세계 굴지의 와이어 기업으로 우뚝 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곳. F1963 바로 옆엔 고려제강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관(박물관)이 있다. 이곳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일본 삿포로에는 삿포로팩토리가 있다. 삿포로 맥주공장 건물을 활용한 복합생활문화공간이다. 삿포로에 갈 때마다 늘 그게 부러웠는데, 이제 우리에게도 F1963이 생겼으니 그 부러움은 많이 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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