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수비의 품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얼마 전부터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다. 자천타천으로 감독까지 겸하게 됐다. 야구기자 생활을 오래하면서 수많은 ‘명장’들의 용병술을 옆에서 지켜봤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은 나이순으로 감독이 됐을 뿐이다.

막상 몸으로 부딪쳐 보니 느끼는 게 많다. 먼저 사회인 야구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동네야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식 구장이 있고, 엄격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 있다. 백네트 뒤에는 기록원도 있다. 경기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팀 기록은 물론 자신의 기록까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경기 내적으로는 승부는 ‘수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투수가 잘 던지고, 타자가 잘 쳐 봐야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 수비다. 사회인 야구에서는 곧잘 한 이닝에 10점이 난다. 여기에는 거의 100% 실책이 끼어 있다. 어이없는 실책은 투수의 난조를 부르고, 투수가 무너지면 팀이 허물어진다.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KBO리그 포스트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다. 17일 열린 NC-두산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승패를 가른 것도 수비였다. NC 중견수 김준완이 4회에 선보인 ‘슈퍼 캐치’는 분위기를 단숨에 NC 쪽으로 가져왔다. 반면 두산 야수진의 잇단 실책은 대량 실점의 원인이 됐다. 경기 후 양 팀 감독 모두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중요하다는 것과 중요성에 걸맞게 대우받는다는 것은 별개인 듯하다. KBO리그는 매년 시즌 후 14개 부문(투수 6개, 야수 8개)에 대한 공식 시상을 진행하는데 여기에 수비 관련 부문은 없다. 1982년 출범 당시 수비수들을 위한 시상이었던 ‘골든글러브’는 1984년부터 포지션별 최고 인기 선수를 가리는 상으로 변했다. 그래서 글러브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명타자까지 골든글러브를 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포지션별로 최고 수비수들에게 ‘골드글러브’를 수상한다. 수비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각 팀 감독, 코치들이 수상자를 선정한다. 대신 타자들은 ‘실버 슬러거상’을 받는다. 일본 프로야구 역시 골든글러브와 ‘베스트9’을 따로 시상한다. 골든글러브가 수비수들을 위한 상이라면, 베스트9는 각 포지션의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수비란 건 참 묘하다. 타율이나 평균자책점처럼 수치화하기 쉽지 않다. 총알같이 옆을 빠져나가는 땅볼 타구가 있다 치자. 이기적인 선수는 그 공을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러면 안타가 되고, 팀은 위기를 맞는다. 반대로 어떤 선수는 죽기 살기로 몸을 날려 공을 잡는다. 아웃을 시키면 다행이지만 어렵게 잡은 공을 1루로 공을 던지다 악송구를 범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그 선수에게는 실책이 기록된다. 팀을 위해 헌신했지만 개인에 대한 평가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둘 중 누가 더 팀에 필요한 선수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팬들과 언론은 밖으로 드러난 수치로 선수를 평가하곤 한다.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다. 야구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많은 조직에서 기본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 밖으로 드러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우리 팀은 짧은 훈련 시간과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3위에 입상했다. 얼마 후 있을 해단식에서 팀을 위해 몸을 날린 최고 수비수에게 최우수선수(MVP) 상을 줄 생각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야구#사회인 야구#수비#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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