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우리 안의 지킬 & 하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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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엘오(ELO)의 ‘Evil Woman’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너는 모든 도덕적 가치를 짓밟았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지. 네가 고통받는 것을 보니 내 가슴이 후련해진다. 넌 악마 같은 여자니까!” 이런 예쁜 멜로디에 어떻게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 발언’ 같은 그런 저주의 노랫말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그 여자는 정말 악마 같은 사람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비교적 착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도 우리는 착하고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죠. 때로 욕망과 감정에 휩쓸려 실수를 해도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감아줄 수 있는 수준의 것입니다. 또 대단한 ‘자기 합리화 능력’을 지녔기에 우리의 착한 자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곤 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극소수의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를 제외하고는)은 계획적으로 자신만의 이득이나 편익을 챙기려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이 부도덕하거나 부정직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 이익에 대한 욕망과 공적 책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익 충돌입니다. 작정을 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윤리가 충돌할 때, 팔이 안으로 굽듯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논리를 펴게 되는 것이죠.

한 분야에 정통한 두 전문가가 상반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상반되는 논리들로 인해 혼란스러워질 때, 인간은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한쪽을 선택해서 그것을 더 강하게 믿고, 기각한 것을 과도하게 부정하곤 합니다. 다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분법적 논리로 회귀하는 것이죠.

부도덕의 두 번째 이유는 심신의 피로와 격앙된 감정입니다. 지치고 본능이 적절히 충족되지 않으면 이성의 힘이 약해져 감정에 휘둘리게 되고, 늘 우리를 노리는 수많은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죠.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비윤리적인 언행에 복수하기 위해 윤리를 저버리곤 하니까요.

세 번째는 한 번 잘못을 저지른 후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하면서 그 잘못을 또 반복하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부정직의 사회적 전염입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누군가가 작은 부정행위를 했는데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그 행위는 용인되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윤리 규범이 느슨해져서 나도 그 행위를 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와 대립하는 집단의 누군가가 그런 부정행위를 하는 것이 발견되면 난리가 납니다. 마녀사냥을 시작하죠. 그것이 우리가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져다주니까요. 하지만 심증으로 시작했다가 물증이 나오지 않으면, 곧 역공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땐 광우병 사태나 타진요 사건 때처럼 ‘다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라고 자책감을 피하는 자기 합리화를 하죠.

우린 비교적 착하지만 아주 착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눈을 부릅뜨고 매일 우리의 도덕적 척도와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죠. 입장 바꿔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너도 나도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하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lo#evil woman#인간#부도덕#지킬 앤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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