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로마나-中요순시대 공통점… 아들 아닌 인재에 왕위 계승
정치보복에 실각한 덩샤오핑… 역사반복 않는 승계구도 마련
시진핑 주석이 무너뜨렸다
정치적 목적의 ‘비리 척결’… 언제까지 과거만 파헤칠 건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끈 오현제(五賢帝)와 중국 요순시대를 이끈 성군들의 공통점은 날 때부터 왕자는 아니었다는 거다. 로마의 현명한 다섯 황제는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사람을 양자로 들여 통치 기능을 훈련시킨 뒤 권력을 물려줬고, 요순임금을 비롯한 오제(五帝)도 혈연관계 아닌 어질고 능한 인물을 찾아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했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국 상고시대의 태평성대가 후계자, 그것도 아들 때문에 끝장이 났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들이 없던 로마의 네 황제와 달리 다섯 번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검투사 뺨치게 잔인한 아들 코모두스가 있었다. 황제가 되기엔 부족한 아들의 자질을 아버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입양의 원칙을 어기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줘 결과적으로 로마의 몰락을 가져올 만큼, 철학자 황제도 부정(父情)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이 있는데도 인재를 찾아 왕위를 계승시킨 중국이 달리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 임금은 선왕(先王)의 후손 중에서 후계자를 찾았지만 마지막 순임금은 치수(治水)에 유능했던 부하 우(禹)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우임금이 선양의 원칙을 깨고 아들에게 왕위를 세습시킴으로써 요순시대는 끝났다. 이후 성군과 폭군, 그리고 평범한 인물들이 번갈아 천자를 자처하며 하(夏)왕조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긴 걸왕을 끝으로 망하고 말았다.
고대 중국과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혼합물이 현재의 중국이다. 18일 개막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집권 2기를 열었다. 런민왕은 ‘중국이 열강의 능욕을 당하던 시대에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국가 독립과 민족 해방 실현을 첫 목표로 삼았다’며 공산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자부했지만 이 당에서만 최고 권력자를 배출한다는 점에선 또 하나의 왕조다.
마오쩌둥 이래 최대의 권력을 장악해 시황제주의(Xitocracy)를 주창한 시진핑이 어떤 권력자로 역사에 기록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세 번의 실각 끝에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이 극단적 정치 투쟁과 정치 보복을 막기 위해 마련한 격세(隔世)간택의 후계자 계승 원칙을 깬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주석이 차차기 주석을 미리 지명하도록 한 격세간택은 선왕의 후손 가운데서 후계자를 택했던 요순시대를 묘하게 연상시킨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지금까지 놀라운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데는 불확실한 승계 구도로 인한 권력 투쟁과 정치 보복의 소모전이 보이지 않은 것도 큰 몫을 했다. 내 후계자가 선임자, 그것도 살아있는 선임자와 긴밀하다면 적폐청산이나 과거사 바로잡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다. 내가 물러나는 순간 바로 적폐청산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전임 후진타오가 그를 이을 지도자로 지정한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를 석 달 전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공산당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부패를 잡아내는 건 식은 차 마시기다. 시진핑의 큰누나 치차오차오 부부와 딸의 자산이 3억7600만 달러(약 4361억 원)라는 2012년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리틀 후진타오’ 후춘화 광둥성 서기도 위태롭다는 외신이 무성하다.
그렇게 지난 5년 집권 1기 내내 반(反)부패 드라이브를 밀어붙이고도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지수 177개국 중 80위가 2016년엔 79위로 겨우 한 칸 올랐으면, ‘부패척결’은 정적(政敵) 제거용이라고 봐야 한다. 시진핑이 이번에 차차기 주석을 지명하지 않고 10년 임기를 마치는 2022년 이후까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반부패 드라이브로 무수한 적을 만든 그로서는 정치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쉽게 권력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시진핑의 연설대로 중국이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을 실현하기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당과 군과 국가를 구원하고 세계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구원했다”는 찬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토크라시 아래,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대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이념 아래 과연 중국 경제가 지금 같은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대국(大國)인 중국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선양도, 후계자 지명도 아닌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고도 5년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보복을 반복하는 우리나라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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