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아베 압승과 일왕의 방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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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부국장·도쿄 특파원
서영아 부국장·도쿄 특파원
일본 국민은 결국 아베 신조 정권의 계속, 즉 안정을 택했다. 22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이런 선거 처음”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명분과 초점이 불확실하고, 야당의 분열 등 이변이 속출했다. 하지만 귀착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별일 없으면 2021년까지 정권을 이끌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을 향한 모색을 계속할 것이다. 한일 관계도 답보할 공산이 크다.

선거판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일본의 미래 변화를 예고하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본 언론은 20일 일본 정부가 아키히토 덴노(天皇)의 퇴위 시기를 2019년 3월 31일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일인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1면은 이번 선거가 ‘포스트 헤이세이(平成)를 내다보는 선거’라는 제목을 뽑았다.

일왕이 바뀔 때마다 즉위한 해를 원년(1년)으로 새로 정해지는 연호는 공공기관의 연도 표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는 쇼와 사람”이라고 하면 1926년부터 1989년생 세대를 뜻하는 식으로 한 세대, 한 시대를 묶는 단위로 쓰이기도 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와 함께 1989년 시작된 헤이세이 시대도 31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연호 자체가 ‘평화’를 담고 있는 헤이세이 시대는 전쟁의 참화를 기록한 쇼와 덴노의 64년 통치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돌입한 것을 의미했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일본에서 자민당 소속이 아닌 총리가 집권하고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을 내놓으면서 주변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 것도 헤이세이, 즉 아키히토 일왕이 발신하는 분위기랄까 성향이 반영된 것 아니었나 싶다.

11세에 일본의 패전을 맞은 아키히토 일왕은 평화헌법이 규정한 덴노의 임무, 즉 국가의 상징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1989년 즉위하자 일본이 전쟁 피해를 입힌 각국으로 ‘위령 여행’을 하며 진정한 ‘전후(戰後)’를 다듬어 갔다. 1991년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1992년에는 중일 국교정상화 20년을 기념해 중국을 찾았다. 2005년에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탑을 찾아 참배했고 2015년 팔라우, 2016년 필리핀 등의 옛 격전지를 찾았다.

이제 대만과 한국(북한 포함)만 남았다. 즉위 때부터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친선 관계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말해 왔지만 지금껏 성사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한국 방문은 위령 여행의 화룡점정”이라거나 “한국에 가지 않는다면 그의 전후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돈다. 지난달 20일 일본 내 고구려 왕족을 모신 고마(高麗) 신사를 참배하자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진심은 한국 내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다.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가 양국 관계 개선 계기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낙연 총리는 23일자에 실린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 전 한국에 와서 그간 양국이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물꼬를 터 준다면 양국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런 분위기가 빨리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헤이세이 시대의 종언은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 안착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헌법상 일본의 ‘상징’에 불과한 일왕은 일본 정부의 허락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장기집권의 발판을 다진 아베 정권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을까. 혹 그가 방한하게 됐을 때 한국은 그 선의를 수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서영아 부국장·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일왕 방한#아키히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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