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 일이다. 홍만회(洪萬恢)의 집에 종려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임금이 내시부의 종에게 가서 구해 오도록 하였다. 홍만회가 임금의 인척이었기 때문이다. 홍만회가 뜰에 내려와 엎드려 아뢰기를 “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한 몸을 다 바쳐도 감히 아까워하지 않을 텐데 하물며 초목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頂踵國恩, 髮膚不敢惜 況卉木乎)? 다만 비록 임금의 인척으로 불리지만 멀리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로서, 초목을 바치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라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 또한 감히 종려나무를 남겨 둘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나무를 즉시 뽑아 버렸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9권 ‘군신(君臣)’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좋은 나무 좀 가져와 보라니까 바치기는커녕 아예 뽑아버립니다. ‘임금께서 이런 것에 신경 쓰셔야 되겠습니까?’ 하는 충정인 건 이해합니다만 반항도 이런 반항이 없습니다. 내시부의 종이 돌아와 상황을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숙종은 오히려 홍만회를 훌륭하다고 칭찬하고는, 오래전 후원에 심었던 종려나무도 뽑아서 옛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명하였답니다.
숙종이 낙타 한 마리를 끌고 들어오라고 명하였다. 승지 박세준(朴世G) 등이 ‘기이한 짐승을 기르지 않는 의리’에 대해 아뢰며 반대하였다. 임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려고 끌어 오라고 한 것뿐이다. 지금 계사를 보니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라, 나는 매우 가상히 여긴다(今觀啓辭, 出於愛君之誠, 予甚嘉尙)” 하고는, 낙타를 즉시 궁에서 내보내라고 명하였다.
부교리 홍우서(洪禹瑞)가 상소하기를 “제선왕(齊宣王)은 도살장으로 가던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성덕(聖德)이라고 칭송합니다. 동물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생우황(生牛黃)을 바치라는 명이 있어서 수개월 동안 공적, 사적으로 도살한 소가 이미 수백 마리입니다. 임금의 약과 관계된 일이라 함부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하께서 만약 이런 상황을 살피신다면 필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하였다.
숙종은 “너의 말이 옳다. 내가 애당초 생우황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즉시 정지하라” 하셨다는군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