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박민우]사우디 여성들이여, 자유의 액셀을 밟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0일 03시 00분


자동차회사 포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운전 허용 결정 이후 룸미러에 여성의 강력한 눈매를 담은 광고를 선보였다. 잠재 고객층인 사우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운전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포드 트위터 캡처
자동차회사 포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운전 허용 결정 이후 룸미러에 여성의 강력한 눈매를 담은 광고를 선보였다. 잠재 고객층인 사우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운전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포드 트위터 캡처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올해 6월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사흘 만에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1년 휴직을 신청하고 함께 와줬다. 처음 타국살이를 경험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해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쉽게 적응하지 못할까 봐 더 불안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집트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함께 나갔다 올 때면 “이집트인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상점의 일부 점원들은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불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에서다. 이곳 교민들은 “혼자 나가면 더 큰 멸시를 당할 게 뻔하다”며 “아내를 혼자 내보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최근 톰슨로이터재단의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엔이 지정한 31개 대도시 가운데 카이로가 여성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혔다. 이집트 언론인 사리아 아민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괴롭힘과 학대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내의 카이로살이가 어쩌면 나의 특파원 생활보다 더 큰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집트 친구들은 “부임지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넨다. 실제로 여성 인권이 더 열악한 곳은 사우디라는 것이다. 사우디의 여성들은 ‘마흐람’이라고 불리는 남성 보호자 없이는 일상적인 생활이 아예 불가능하다. 주로 아버지나 남편, 아들이 마흐람이 되는데 이들의 허락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직장에서 일을 할 수도 없다.

얼마 전에는 사우디 여성의 인권이 로봇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우디 정부는 24일 수도 리야드에서 대규모 국제투자회의를 열고 토론의 대담자로 나선 인공지능(AI) 여성 로봇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소피아는 마흐람 없이 무대에서 단독 연설을 하고 히잡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2015년 4월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공립학교에 역사상 처음으로 여학생을 위한 체육수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사우디 여성들이 그토록 원하던 운전을 허용한 것이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국가다. 사우디 정부는 조만간 여경과 여성 운전강사 등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 내년 6월부터 여성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예정이다.

운전은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동차야말로 자유주의의 아이콘과 같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면서부터 이동의 자유와 편의가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자동차 안에서는 밥을 먹고 화장을 고치는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연애와 같은 은밀한 사생활도 누릴 수 있다. 자동차는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단인 동시에 남에게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 청소년들은 자동차를 소유함으로써 자유인, 즉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운전의 자유를 갈망해 온 여성 소비자 덕분에 사우디의 자동차 시장은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의 20세 이상 여성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전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잠재적 고객들을 잡기 위해 이미 치열한 마케팅 열전에 들어갔다. 포드는 니깝(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을 착용한 여성의 눈을 차량 룸미러에 비친 모습으로 표현한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의 진짜 목적은 산업 부흥에 있다고 말한다.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탈석유 시대에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은 외국인 운전기사를 통해 매년 빠져나가는 880억 달러 규모의 외화 유출을 줄이는 동시에 여성 취업률과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운전을 맛본 사우디의 여성들은 더 큰 자유와 권리를 열망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사우디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사우디 여성들이 자유의 액셀을 더욱 힘차게 밟기를 기대해 본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사우디 여성의 인권#여성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도시#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자유의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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