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엔 밥 한 공기에 된장국, 장아찌 몇 조각이 일본인들의 아침 식사였다. 가볍게 끓여낸 된장국은 집의 상징이고 엄마의 냄새다. 매일 아침 마른 멸치의 머리 부분만을 떼 내든가 쓴맛이 나는 내장을 제거하는 것은 내 일이었다. 반짝이는 은빛 멸치의 경우엔 통째로 사용하기도 했다. 멸치와 다시마를 찬물에 넣고 몇 분 정도 끓인 후 체에 내린다. 내린 국물에 미소와 사각으로 잘라둔 두부를 넣고 빨리 끓여 완성한다.
멸치는 정어리, 고등어와 더불어 먹이사슬을 구성하는 생선으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다. 플랑크톤과 함께 삼각관계를 유지하며 그 개체수가 조정된다. 에도시대에는 생산량이 많아 벼농사의 퇴비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오세치 요리’(부귀 행복 장수 번성 등 길한 의미들을 담아 준비하는 설음식)에 자손 번성의 뜻을 담은 멸치조림은 꼭 넣어야 하는 중요 재료이다.
서울에서는 1년에 한 번 정도도 보기 힘든 신선한 생멸치를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기장, 남해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마른멸치나 액젓으로 가공된다. 액젓 특유의 향과 맛으로 김치의 깊은 맛을 살려주기도 하지만 태국의 남쁠라, 베트남의 느억맘도 빼 놓을 수 없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가룸이라 해서 양념으로 사용되었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생선소스를 담는 항아리가 발견되어 당시 생선소스가 요리에 많이 사용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최근 가룸을 다시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가 생기면서 이탈리아 요리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소금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부가했던 중세시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멸치를 소금 범벅이 되게 해 두고 요리에 간을 하게 된 것이 안초비라 부르는 절인 멸치다.
프랑스의 타프나드, 니스 지방 요리인 니수아즈 샐러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요리인 바냐카우다, 나폴리 지방의 푸타네스카, 미국의 시저 샐러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요리들은 안초비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몇 해 전 여름휴가 때,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을 돌다가 님이란 작은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방은 이미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고 그날 저녁식사는 감동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하룻밤을 연장했다. 아침 자전거에 재료를 싣고 출근하는 셰프는 그날의 예약과 메뉴에 맞춰 직접 장을 봐 온다고 했다. 둘째 날 밤 셰프는 전날 내놓은 요리가 아닌 특별메뉴로 우리 부부를 또 감동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는 또 하루를 연장했다. 셰프에 대한 도전이었다.
오늘밤까지 우리에게 특별메뉴를 해줄까? 예약이 꽉 차 바쁜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또 어제, 그제 식사만큼 맛있게 해내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여행계획은 뒤죽박죽되었다.
소박한 실내,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언뜻 보면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 매번 다른 메뉴를 해 주었지만 처음에 빵과 함께 내놓은 타프나드는 3일 내내 바뀌지 않았다. 버터나 올리브오일을 대신해 올리브와 안초비, 마늘, 케이퍼를 넣고 갈아 만든 타프나드가 그 당시 참 인상적이었다. 매일 밤 우리 부부를 위한 특별메뉴를 제공해 주었고, 메인이 끝날 때면 바퀴 달린 디저트 카트를 끌고 나타나 모든 디저트를 조금씩 다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도 우리 부부가 셰프라 짐작했다고 했다. 우리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에서 그는 유명한 셰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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