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82>최초의 여성 작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0일 03시 00분



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최초의 여성 작가는 누구일까?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다. 아홉 권 분량의 시를 썼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것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여성이 쓴 최초의 장편은 10세기 말∼11세기 초에 활동한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다. 당시 귀족사회를 무대로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사랑과 삶이 70여 년 세월에 걸쳐 400명 넘는 인물과 함께 펼쳐진다. 우리말 번역은 2007년에 전 10권으로 나왔다.

우리 역사에서 문집을 남긴 최초의 여성 문인은 허난설헌(1563∼1589)이다. 허난설헌은 자신의 글을 불태우라 유언했지만 동생 허균이 누이의 작품을 모아 1608년에 ‘난설헌집’을 간행하였다. 오늘날 전해지는 내용은 1692년 동래부(東萊府)에서 중간한 판본에 바탕을 둔다. ‘난설헌집’은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발표한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은 박화성(1903∼1988)이 1932년 동아일보에 청전 이상범의 삽화와 함께 연재한 ‘백화(白花)’다. 여성 작가 최초의 장편 연재이기도 하였다. 고려 말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연재 당시 이런 규모의 긴 작품을 쓰는 작가가 여성일 리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올해 2017년은 우리 근대 여성 작가 최초의 문학작품, 김명순(1896∼1951)의 단편 ‘의심의 소녀’가 발표된 지 100주년이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모집 3등 입상작으로 축첩 제도의 억압과 폭력 속에 대를 이어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그렸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품집이자 시집도 김명순의 ‘생명의 과실’(1925년)이다. 이 책에 실린 시 ‘창궁’이 가을을 노래한다. ‘파아란 가을 하늘 우리들의 마음이 엄숙할 때 감미로운 기도로 채워서 말없이 소리 없이 웃으셨다.’

오랜 세월 여성 문학인들은 여류(女流)로 일컬어졌다.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여류는 있어도, 같은 맥락의 남류(男流)는 없었다. 여성은 전문성의 잣대로만 평가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여성 작가는 역사와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편견마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여성 작가들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형상화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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