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큰 무당거미와 작은 무당거미들이 거실 방충망 앞에 거미줄을 가득 쳤다. 몸길이 겨우 2cm인 녀석이 1m가 훨씬 넘게 거미줄을 친 것이다. 그 덕분에 방충 효과는 두 배가 되었고, 이따금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매일 거미를 관찰하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면 거미는 다리 여덟 개를 거미줄에 걸쳐 웅크린 채로 달라붙었다. 거미의 머리가 위 또는 아래로 향할 땐 중력 때문에 다리의 배열이 달라졌다. 특히 작은 거미는 큰 거미의 먹이가 된 채로 거미줄에 돌돌 말려 있었다. 또 다른 작은 거미는 다리 몇 개를 뜯겼는지 겨우 세 개의 다리로 몸을 지탱했다. 큰 녀석은 암컷이고, 작은 녀석은 수컷들이었다.
무당거미 말고도 신기한 거미들이 많다. 물과 음식 없이 1년간 생존할 수 있는 아프리카 모래거미부터 새똥무늬를 가진 거미, 다리 두 개를 개미 더듬이처럼 흉내 내는 거미, 하얀 꽃 속에서 꽃술 모양으로 진화한 거미 등. 모두가 사는 환경에 따라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자연 선택을 거치며 진화해왔다.
거미의 조상은 전갈 혹은 삼엽충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표본과 화석 증거에 따르면 긴 꼬리와 실샘(silk gland)을 가졌던 3억8000만 년 전의 전갈과 같은 조상이 오늘날 거미로 이어져 왔다는 설이 있다. 실샘은 분비선으로 점착성 단백질, 즉 거미줄 같은 게 나온다. 다른 가설에 따르면 약 4억 년 전 고생대, 물에서 살던 삼엽충 일부가 뭍으로 올라와 낙엽, 토양과 같은 어둡고 습한 곳으로 가 거미가 됐다고 한다.
거미는 곤충이 절대 아니다. 거미는 절지동물문에, 거미강, 거미목으로 분류된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총 4만4906종의 거미가 존재한다. 국내에는 약 700종이 있으며, 전체 생물다양성 가운데 7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미가 진화하며 다양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을까.
이달 19일 ‘사이언스’는 거미 유전학을 소개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거미 연구원들은 거미의 전체 유전체를 나열해 단백질 연구를 진행했다. 무당거미를 비롯해 아프리카 벨벳거미, 일반 집거미의 모든 DNA를 분석했다. 분자 분석으로 엉켜 있던 거미의 진화적 경로를 조망하고 거미줄의 복잡성을 들여다본 것이다. 눈에 띄는 건 거미줄 없는 거미가 땅에서 더 많은 곳을 탐험하며 다양성을 확보해 왔다는 사실이다. 거미의 정체성은 거미줄이지만 거미집을 짓지 않은 집단이 다양성을 토대로 더욱 진화하며 막강해질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모든 거미는 실을 뽑을 수 있지만 거미집을 만드는 종은 절반뿐이다. 새끼 거미들은 나무에서 바람을 타고 새로운 영역으로 날아갈 낙하산을 만들거나 물에 빠졌을 경우 돛으로 이용하기 위해 거미줄을 뽑는다. 대개 거미는 거미줄로 먹이를 낚아채는데, 천적인 새를 현혹하기 위해 썩은 먹이나 나무 조각을 일부러 곳곳에 걸어두고 3중의 거미줄을 치기도 한다.
거미줄은 여러 아미노산이 조합된 단백질 성분이다. 거미줄은 거미의 실샘에서 만들어진 액체가 실젖으로 나오면서 공기를 만나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 질겨진다. 거미줄을 이용해 인공 장기나 방탄복, 바이오 섬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다. 이번에 분석된 미국 무당거미의 경우 28개의 거미줄 유전자가 있는데 이 중 8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또 거미줄의 신축성과 탄력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는 209개나 된다. 특히 거미의 몸속엔 거미줄을 보호하고 섬유 생산을 돕지만 거미줄은 아닌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인공 거미줄을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늘어나는 셈이다.
거미 연구원들은 2014년부터 거미 70종의 유전자 3400개를 비교 분석했다. 이로써 늑대거미와 깡충거미같이 집을 짓지 않는 거미들이 집을 짓는 거미보다 훨씬 빨리 다양화한다는 걸 알아냈다. 새로운 영역을 탐험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다양성의 진척도가 빨랐던 것이다. 언젠가 모든 거미가 고정된 거미집을 짓지 않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유목 거미의 탄생이다.
거실 창가에 있던 무당거미들이 사라지자 거미집이 폐가처럼 보였다. 1주일 뒤 바닥에서 통통하던 배가 홀쭉해진 채 죽어 있는 무당거미를 발견했다. 산란 후 체력이 다해 쓰러졌나 보다. 시인 월트 휘트먼은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거미를 칭송했다. 고립돼 있는 거미가 거미줄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텅 빈 주변을 개척해 나가는지 가끔씩 살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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