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개와 인간의 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반려견사고 계기로 분출된 非반려인들 분노와 반감
집단극단화 현상 엿보여
라이프스타일도 극에서 극… 소비에서 절약으로 리셋버튼
균형과 다양성 존중 통해 극단적사고 폐해 경계해야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개들의 사생활이 한 주 내내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연예인 가족의 개가 유명 한식당의 주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이 촉발한 이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인터넷에 몰려든 대중은 또 한 번 국민적 분노를 터뜨릴 대상을 발견함과 동시에, 너나없이 개에게 억눌려온 ‘인권의 피해사례’를 호소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거리가 안 된다던 대중언론의 오랜 교범은 마침내 수정될 때를 맞은 듯하다.

궁금증이 생긴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 하고, 반려견인의 무지와 무례함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가 이 정도로 쌓이는 동안, 왜 여론공간은 잠잠했을까. 집 강아지가 애완견에서 어느덧 반려견으로 호칭이 달라지더니, 개주인도 ‘보호자님’으로 덩달아 변했다. 반려동물을 테마로 한 ‘펫방’도 늘었다. 개는 살아 있는 완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상전도 아니다. 한데 개의 권익 신장이 급격히 진행되는 와중에 이에 토를 다는 견해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어느 날 총궐기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연상되는 것이 있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언급한 집단극단화와 사회적 폭포 현상.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교류할수록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집단극단화. 이를 한껏 부풀리는 것이 바로 사회적 폭포 현상으로 실제로 내가 아는 정보 대신 남들의 생각에 근거해 판단을 내린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집단의 세몰이 양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타인의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한국인들로서는 어떤 이슈에 대한 사고방식이 일단 주류로 자리 잡으면 자체 검열이든 아니든, 소수의견을 입 밖에 내기 힘들다. 자기 의견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간단히 재단하는 풍토에선 더 그렇다. 즉, 사회적 억압이 중증이라는 신호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그러하듯. 이렇다 보니 원래 생각이 뭐였는지조차 잊고 이리저리 대세에 편승하는 데 익숙하다. 이슈가 터지면 한쪽으로 기운 여론의 추는 금세 반대편으로 쏠리며 상황이 급반전하는 롤러코스터 현상이 되풀이된다. 일상이 그렇고 정치가 그렇다.

라이프스타일에서도 극단주의는 엿보인다. 작년부터 2030세대에게 현재 행복에 집중하자는 욜로(You Only Live Once)가 화두였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이 화두는 스트레스 해소나 재미를 위해 돈을 써버리는 ‘홧김비용’ ‘탕진잼’ 같은 소비풍조로 이어졌다. 욜로를 소비충동으로 오역하는 상황에서 절약의 미덕은 왠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 충동적 소비생활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요즘 다시 절약을 주목하는 이른바 ‘짠테크’로 리셋 버튼이 눌러졌다. 개그맨 출신 김생민이 방송에서 의뢰인들의 소비를 분석해 과소비를 꾸짖을 때 외치는 ‘스튜핏(stupid·어리석은)’이란 말이 유행어로 각광받는다. 대세를 좇으면서도 소비피로증은 어지간히 부담스러웠나 보다.

스웨덴 사람들의 지혜인 ‘라곰’에 눈길이 간다. 중용과도 비슷한 말인데 ‘적지도 많지도 않고 딱 알맞은, 적당한’이란 의미다. 극단과 모순이 뒤섞인 공동체가 우리만의 고민은 아닌 터라 지구촌은 라곰을 주목하고 있다. 의미는 상황마다 조금씩 변한다. 음식 먹을 때는 절제, 인테리어에서는 ‘적은 것이 더 낫다’를 뜻한다. 깨어 있음, 지속가능성의 개념으로도 해석된다. 여기서 적당함이란 ‘대충’ ‘게으름’과 다르다. 과잉과 극한을 피하자는 것일 뿐. 모든 영역에 중간지대가 없고 극과 극의 대립이 유별난 한국 사회가 유념할 만하다.

균형이 필요하다. 반려견을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과 잠재적 위험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직시하고 존중해야 한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 쓸 것은 쓰되 내일에 대비해 저축하는 것 역시 소중한 것처럼. 그때그때 사회적 의제에 극도로 단순화된 의견에 대다수가 휩쓸리는 사회는 위태롭다.

집단극단화가 위험한 것은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나 사회생활에서도 극단적 사고를 내려놓고 적당함의 미학을 되새기면 좋겠다. 도약을 위한 적당한 좌절감 대신 과도한 열패감에 빠진 청년들, 적당한 기대가 아니라 턱없이 높은 기대치로 몸살 앓는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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