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남성은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포마드를 바른 머리에 다부진 인상의 그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 또는 “다음에…”로 일관하며 한국 취재진을 피하던 그의 파안대소를 본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경기장에 있던 대한유도회 관계자들에게 먼저 다가간 그는 친한 선배와 동료를 대하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이전의 얼굴로 돌아온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유도회 임원에게 “잘 아시는 사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잘 알다마다요. 국제대회에서 항상 봅니다. 가족 얘기에 농담도 하고…. 우리가 장비 등 여러모로 지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뿐이 아닙니다. 용돈으로 쓰라고 몇백 달러씩 돈도 건네는걸요. 이번에도 줬어요.”
북한 선수단을 처음 취재했던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겪었던 일이다. ‘표정 관리의 대가’라는 생각과 함께 2003년 8월 TV를 통해 봤던 북한 응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이 “장군님(김정일) 사진이 거리에 방치돼 있다. 비라도 맞으면 불경”이라며 사진이 박힌 플래카드를 떼어내며 항의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미녀 응원단’으로 불리며 가는 곳마다 큰 관심을 받았던 그들의 우는 얼굴이 과연 진짜일까 궁금했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의 주인공은 개최국이 아닌 북한이었다. 개막 직전에 열린 국내 8·15 행사에서 보수단체가 인공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대회 불참을 시사했던 북한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감 표명을 한 뒤에야 참가 의사를 다시 밝혔다. 북한은 개막 뒤에도 보수단체의 시위 등을 트집 잡으며 남은 일정을 볼모로 삼았다.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원단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인 700명을 보내겠다고 한 뒤 지원 금액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자 전가의 보도처럼 ‘불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의 행동 하나하나에 국내 여론은 둘로 갈라져 소모전을 벌였다. 요약하자면 “돈만 대주고 얻는 것은 없다”와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그깟 돈이 문제냐”였다.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막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은 아직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한 종목이 있기 때문에 결심만 하면 출전에는 문제가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적극적이다. 북한이 참가하면 장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대부터 올림픽에는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무기를 내려놓다’는 그리스어)로 불리던 올림픽 휴전이 있었다.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참가는 평화를 으뜸으로 치는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한다. 평창에 온다면 올림픽 흥행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여러모로 볼 때 북한의 참가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를 볼모로 잡혀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휘둘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은 스포츠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4년 동안 올림픽을 기다려온 선수들이 있는데도 올지 말지를 저울질한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두 얼굴이 되는 게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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