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상처의 특성 중 하나는 보편성이다. 겨자씨 이야기는 이 보편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하늘나라를 작은 겨자씨에 비유해 설명한, 우리가 잘 아는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와 약을 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에게 겨자씨를 처방했다는 부처의 이야기다.
그 여인의 이름은 키사고타미였다. 원래 이름은 고타미였다. 사람의 특징을 보아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습이었는지, 사람들은 마르고 앙상하다는 의미의 ‘키사’를 붙여 그녀를 키사고타미라고 불렀다. 가난하여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랬는지, 여인은 이름처럼 앙상하고 볼품없었던 모양이다. 구혼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부자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그들 사이에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녀의 외모와 비천한 배경을 멸시하던 소리들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무슨 변고인지 그 아들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 슬픔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플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약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결국 부처에게까지 가서 약을 달라고 했다. 부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런 약이 있노라고 말했다. “겨자씨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발언이었다. 부처는 그녀에게 겨자씨를 조금만 얻어오라고 했다. 대신,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얻어오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녀는 부처의 말을 믿고 겨자씨를 찾으러 나섰다.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집을 찾아가 겨자씨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던 다음 질문을 했다. “이 집에 누군가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했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자씨가 있는 집은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없었다.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현실-테스트’를 거치면서 ‘아픈’ 아이는 ‘죽은’ 아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를 땅에 묻고 애도할 수 있었다. 그렇다. 겨자씨를 구하려고 아이를 품에 안고 집집마다 찾아다닌 경험이 정신분열증을 치료한 것이었다. 부처는 겨자씨를 처방함으로써 그녀를 치유의 길로 안내했을 따름이었다. 그녀를 낫게 한 것은 말이 아니라 ‘현실-테스트’였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것, 타자의 아픔도 돌아보라는 것, 아픔은 우리를 묶어준다는 것, 겨자씨 얘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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