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까지 확고하고도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에 임해왔다”며 5대 원칙을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정착, 비핵화 실현,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제시했던 대북정책 담론을 한반도 평화정착과 비핵화라는 두 가지 목표와 남한 주도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두 가지 방법, 그리고 단호한 도발 대응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군사옵션 반대-대화 우선’의 평화주의 지향은 더욱 분명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은 안 되며 우리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행동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자체 핵무장도, 전술핵 배치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도 남북문제의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며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5원칙이 정부의 새로운 한반도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향후 북의 추가 도발에 유연한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지만 문 대통령 연설대로 북이 사전 동의를 받아 ‘특대형 도발’을 할 리 없다. 핵능력 완성 단계에 들어선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얻겠다는데 우리는 핵을 개발하지도, 보유하지도 않아야 하는가. 북을 압박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들을 배제한 채 어떻게 북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지, 나아가 어떻게 핵을 포기시킬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주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통해 김정은 정권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거듭 강조할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도 어제 연설에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 국제공조’를 빠뜨리진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가 없는, 목표 달성의 수단도 방법도 마땅치 않은 한반도 5원칙은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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