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변호사와 VIP 증후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일 03시 00분


‘좋은 변호사는 나쁜 이웃’ 다른 나라의 속담을 봐도 변호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세계 공통의 현상인 듯
잘해주려다 실수하는 의사처럼 법조계 전관예우 너무 믿으면 VIP증후군에 낭패 볼 수도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다사다난했던 2017년도 바야흐로 11월에 들어섰다. 독서하고 산책하기에 좋은 늦가을! 어디를 가도 노랗거나 울긋불긋한 단풍이 산야와 도심을 물들여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침저녁으로 개와 함께 동네 길을 걷다 보면 온갖 상념이 교차한다. 변호사로 등록한 지 3년이 넘었다. 한동안 ‘변호사’란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 제때 대답을 못 하는 실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귀에 익었다.

변호사는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남의 법률사무를 대리해주는 개인사업자다. 처음 개업할 때는 이제 공직의 무거운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개인사업자가 구애받을 것이 뭐 있겠는가? 법률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미묘하게 달랐다. 변호사의 처신도 조심스럽기가 만만치 않다.

우선 변호사법이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 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며 무거운 짐을 지운다. 그런 연장선에서 변호사는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되고, ‘연간 일정 시간 이상 공익 활동에 종사하라’는 의무까지 부담한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어기면 법률적 제재가 따르는 강행 규정이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는 공직자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박쥐처럼 애매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공직에 있다면 국가와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이라도 갖고 살아가련만 변호사는 이조차 여의치 않다. 그간에 불거진 각종 물의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은커녕 배척되거나 폄하받기 일쑤다.

변호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인 것 같다. ‘변호사는 모두 지옥에 있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 ‘좋은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라든지 ‘흰 것을 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와 화가뿐’이라는 외국의 속담이 그것을 증명한다. 사회적 요구와 세간의 인식 차이가 크니 씁쓸한 일이다.

어느 직업인들 애환이 없겠냐만 변호사 생활에도 힘든 일들이 적지 않다. 의뢰인이 형사사건에 연루돼 고통을 겪으면 변호사도 덩달아 피해자나 죄인이 된 것같이 괴롭다.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이른바 감정노동자가 겪게 되는 숙명이다. 최근 들어 검찰 수사가 활발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조사를 받고 심지어 구속되는 일까지 생긴다. 검사로서는 범죄 수사와 정의 구현의 당연한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겠지만 변호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인간적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때가 적지 않다.

의사들 사이에 회자되는 용어 중 ‘VIP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환자일 때 의사가 잘해 주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실수하는 경우를 말한다. 환자를 편하게 해주려고 검사를 생략했다가 말기 암처럼 결정적인 병을 놓쳤다거나, 수십 년 경험의 원로 의사가 가까운 지인의 수술을 직접 하다가 노안(老眼)이나 손 떨림 때문에 사고를 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어떤 분야의 대가도 나이 들거나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되면 실력이나 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소위 ‘전관예우’가 있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오래 근무하고 고위직에 있다가 퇴임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그의 경륜이나 개인적 연고로 잘 해결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변호사를 믿고 의지하는 의뢰인들에게 ‘VIP 증후군’의 위험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가까운 지인에게는 아무래도 전문가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거나 감정적으로 몰입하다 보면 사건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근거 없는 호언장담으로 낭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

수사나 재판은 사실관계와 법률에 따라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변호사가 결과를 좌우할 수는 없다. 결과가 잘못되면 피해는 결국 의뢰인에게 돌아간다. VIP 증후군을 피하려면 의사나 환자에게 개인적 감정이나 과도한 보수(報酬) 등 전문가의 객관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의사는 정해진 매뉴얼대로 진료하고, 환자는 병원을 믿으며 필요 이상의 기대나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것은 법조계에서도 마찬가지 이치이리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변호사#vip 증후군#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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