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스타란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한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단어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간판(看板)과 스타(star)가 합쳐진 말이다. 영화관 간판이 풍미하던 시절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한국 영화를 대표해온 간판스타는 누구일까? 지금은 다르겠지만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영화배우 강수연(51), 임권택 감독(81), 김동호 위원장(80)의 이름을 피해 갈 수 없다. 강수연은 여배우의 대명사였고, 임 감독은 한국 영화의 운명을 짊어진 개척자였고, 김 위원장은 영화 행정의 달인이었다.
강수연은 1987년 임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는 국내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삭발 연기를 펼친 그는 1989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김 위원장의 최근 직함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었지만 그냥 ‘위원장’으로 불렸다. 1996년 제1회부터 2010년까지 집행위원장으로 부산을 영화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수십 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조용한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참석자와 일일이 ‘원샷’을 하곤 했는데 한 바퀴가 아니라 때로 두 바퀴도 마다하지 않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인이었다. 그러던 그의 금주 선언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건강을 지켜 부산영화제와 영화계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임 감독은 2002년 영화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해 높기만 했던 칸 국제영화제의 벽을 넘어섰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후 2010년 102번째 영화 ‘화장’까지 한국 영화의 산증인이다.
최근 경기 용인의 자택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103번째 영화, 해야 하지 않냐”는 말에 그는 우선 몸이 좋아져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지난달 21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한 번도 안 빠지고 갔어요. 요즘 몸도 불편해 어지간하면 안 갔으면 했는데…. 김 이사장과 수연 양이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요.”
그는 갈등 끝에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물러난 김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사퇴한 것을 특히 아쉬워했다. “두 사람 모두 책임질 일보다는 공이 훨씬 많은데…. 이제 누구를 영화제 간판으로 하겠어요?”
임 감독과 부인 채령 씨가 들려준 얘기는 영화 ‘시네마천국’ 중 토토의 추억처럼 흐뭇하고 아쉽고 아름다웠다. 2015년까지만 해도 설날 다음 날 그의 집에서 영화인들의 모임이 열렸다. 거의 40년간 지속됐다. 임 감독의 작품에서 조감독을 거친 김영빈 김홍준 김의석 김대승 감독은 ‘직계’로 불리고, 배우 박상민 신현준 김승우 등은 ‘장군의 아들’ 팀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부싸움의 원인이기도 했다. “생전 백화점 근처에도 안 가는 양반이 외국 손님 선물 산 카드 명세서 보면 화가 안 날 수 없죠. 밥값이며 그런 비용이 1000만 원 넘기도 했어요.”(채 씨) “국제 영화계에서 수십 년 만난 사람이 적지 않아요. 그들이 오면 제가 호스트죠. 허허.”(임 감독)
영화제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지만 두 사람의 내몰린 듯한 사퇴는 씁쓸하다.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한국 영화를 이끌어온 헌신적인 국가대표였다. 그 국제적인 명성과 경험은 제대로 살려야 할 우리 영화계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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