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퀄컴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왕서방 같은 회사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분야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은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면서, 제품 매출의 5%가량의 특허료도 챙긴다. 스마트폰이 팔리면 팔릴수록 퀄컴이 챙기는 특허료도 늘어난다.
▷퀄컴은 특허권 사용 계약을 맺을 때 “칩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식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퀄컴의 이런 관행에 각국 경쟁당국이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한국이 1조3000억 원, 중국이 60억8800만 위안(약 1조220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지난해 매출 3위인 퀄컴을 4위 브로드컴이 1000억 달러(약 112조 원)에 인수를 타진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퀄컴의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성사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산업은 그야말로 격랑을 타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를 470억 달러에 사들인 퀄컴은 도리어 인수 대상이 됐다. 싱가포르 회사 아바고는 2015년 미국 브로드컴을 370억 달러에 인수해 이름을 바꾸고 퀄컴 사냥에 나섰다. 일본 소프트뱅크도 지난해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32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합종연횡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를 만들어 1500억 위안 이상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굴기’에 나설 태세다.
▷변화 없이 생존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준다. 인텔은 1970년 처음으로 D램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했지만 시장 주도권을 일본에 빼앗긴 뒤 과감히 방향을 비메모리로 바꿔 지금은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70%를 점유하는 1위 기업이 됐다. 반면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대량생산 시대에도 기술에 집착하다 “과잉 품질의 고비용 체질의 병”(‘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유노가미 다카시)을 고치지 못하고 무너졌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바로 지금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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