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로 땅을 밀어내고 천편일률로 만든 신도시
스위스 시골은 부러워하며 시멘트 아파트를 선호하는 아이러니는 뭘까
자연과 벗 삼은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신도시 생겼으면
세계적인 선박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내한하여 우리나라 대표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분위기가 편해졌을 때 그가 옆자리의 한국 대표에게 하는 농담을 들었다. “한국의 집들은 모두 한 사람의 건축가가 설계했나요?” 서울과 지방이 온통 비슷한 아파트로 도배된 모습에 의아했던 그가 귓속말로 던진 질문이었다.
경기도 일산과 분당신도시가 최고의 인기를 끌 무렵 나는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밀턴킨스를 찾았다. 세계적인 신도시 개발의 모범사례로 교과서에 등장하던 곳이라 현장을 둘러보고 싶었다. 기차역에서 가는 길을 묻자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런 곳을 무엇 하러 가느냐. 세월이 흘러 이끼가 끼지 않은 곳을 우리는 좋은 동네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작 신도시에 가보니 도로에는 중앙선 대신 나무와 꽃들이 심어진 분리 공간이 편안함을 선사했고, 낮은 집들로 30년 이상 계획도시를 만드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그 후 여러 신도시가 탄생했고, 관련 뉴스가 복권 발표하듯 나왔다. 그때마다 나는 강의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단독주택들로 신도시를 만든다는 뉴스를 듣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그러나 신도시 건설의 정책에 숨어 있는 이익배분 공식은 그런 뉴스를 출현하지 못하게 하였고, ‘신도시 건설=땅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라는 등식을 지속시켰다. 아파트의 대세 역시 강화되어 전국 주택 중 60.1%를 차지하고, 나머지도 연립이나 다세대 같은 공동주택이 15%다. 단독주택은 23% 수준이지만 그나마 진입로와 주거여건을 고려하면 살 만한 단독주택은 통계보다 훨씬 드물게 되고 말았다.
밀어내기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대는 도시발전이 왜 지속되어 왔을까? 적잖은 사람은 좁은 국토에 인구가 많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드문 시골의 밭과 논바닥에도 아파트가 육중하게 들어서는 걸 보면 그 말이 옳은 건 아니다. 편리함에 중독된 우리의 의식, 역사와 자연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정부의 안목, 이권을 나눠 갖는 권력과 투전판의 투기꾼들이 한몫을 했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시장에서는 도시의 아파트가 유일한 환금성을 갖는 결과가 질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서울 시민의 60%가 기회가 되면 시골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설문에 응답하는 현상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운 도시설계와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아파트를 나와 도시를 탈출해야 하기에 주말 교통체증이 주중보다 심각하며, TV의 웬만한 인기 프로그램은 산골이나 어촌에 가서 1박을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외국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습관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어느 나라가 가장 마음에 들었느냐고. 이제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응답한 나라는 스위스다. 그 이유를 재차 물으면 산골의 아름다운 마을이 좋았다고 대답한다. 이쯤 되면 어리둥절해진다. 아파트 일색의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에 힘들게 일하며, 몇 년 적금을 부어 마련한 돈으로 10박 11일 외국여행을 가서 다 쓰는데 겨우 시골의 아름다운 동네라니. 여기서 비롯된 여행수지 적자가 무려 10조 원을 넘을 때도 있고, 올해는 벌써 7조 원을 넘은 상태다.
정작 우리의 삶터를 쾌적하고 아름답게 해놓고 살 수는 없을까? 나는 도시의 시멘트와 자본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을 모아 산골에 마을을 만들고 있다. 열여덟 가구가 터를 마련하였고, 여섯 집이 완성 단계에 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호사가 아니라, 목숨을 건 프로젝트이자 실험이다. 최종적으로는 화가 한 명을 찾아 산골 미술관을 하나 여는 게 소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뉴스를 기다리고 있다. 낮은 집들로 자연을 살리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든다는 뉴스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스마트 신도시를 구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한다. 정권의 상징 사업으로 자원을 투입할 태세다. 그러나 자동화와 빅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쾌적하고 아름다우며, 공동체의 어울림이 신나는 도시다. 이게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국격도 높여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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