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의 확산과 창의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초등 수학·과학 교육과정 개발 및 융합인재교육(STEAM), 영재 교육 등을 담당하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창의재단 김윤정 미래사회인재단장은 최근 매우 흥미로운 조사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영재 교육을 받은 학생 838명과 학부모 780명을 설문조사해 국내 영재 교육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결과를 보니 모든 응답에서 일관되게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바로 영재의 발굴부터 교육, 진로 탐색에 이르기까지 어느 응답에서도 ‘학교’나 ‘선생님’이 1순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영재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으로 ‘스스로 학습, 탐구하려는 마음’(71.8%)을 압도적인 1위로 꼽았고 ‘선생님의 지도’(5.4%)는 미미했다. 영재성 계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는 선생님보다 ‘부모님’이었다. 궁금증은 주로 △인터넷 검색(44.6%)이나 △책(14.6%)으로 푼다고 했다.
학부모 설문 결과를 보면 공교육은 영재 교육에서 기능을 거의 못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영재성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재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학교 커리큘럼’, ‘담당 교사의 언행 및 태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아이의 영재성이 가장 많이 약화됐다고 답했다. 교사가 아이의 영재성을 알아봐 주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질문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 아이’로 취급해 친구 관계마저 나빠졌고, 제대로 지적 욕구를 채우지 못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됐다고 한다. 때로 이들에게 영재성은 선물(gifted)이 아닌 고통이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영재 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과거 한 교육부 관계자는 사석에서 “왜 영재를 키워야 하느냐. 대한민국에 영재 몇 명이 없어서 우리가 잃는 것보다 그 아이들처럼 되겠다고 수천수만의 다른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과정에서 잃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교육부의 정책 목표가 부모들의 교육열을 낮춰 사교육을 잡는 데 있다 보니 ‘고도 영재’로 분류되는 이른바 진짜 영재들은 ‘조용히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김 단장은 “영재 교육은 장애아 교육처럼 ‘특수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사교육 및 입시 부작용 우려 때문에 정책적으로 소외받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교육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모든 아이는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해외에서는 정서장애가 많은 영재들에게 심리 돌봄까지 병행하며 특수교육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은 헌법정신과 학교법에 근거해 ‘개별화 교육’을 추구하고 학생 개개인의 잠재능력에 맞는 영재 교육을 제공한다. 싱가포르와 이스라엘은 고도 영재를 별도로 구분해 육성한다. 영국은 교원 양성 과정에 영재 교육을 필수로 다뤄 교사들이 이들을 적절히 구별하고 맞춤 교육으로 연계시킬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들 나라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독일에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재 교육은 엘리트 교육이며 특권층을 위한 교육’이라는 인식이 강해 공교육에서 언급조차 민감해했다. 30년 전 선진국의 상황이 우리의 오늘과 사뭇 닮아 있는 셈이다.
창의재단이 80주년을 맞을 때쯤이면 한국 영재들도 ‘날개를 펴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물론 그 전에 영재가 아닌 아이를 영재로 만들려는 한국 학부모들의 과욕부터 내려놔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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