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부귀쌍전의 땅 용산, 72년 만의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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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왜인들이 숭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에 멋대로 점(點)을 쳐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우고 경계를 정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번번이 군용지라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 갔다.”

구한말의 애국지사 황현이 ‘매천야록’에 남긴 글이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1906년 용산에 2개 사단 규모의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해 무단으로 사용하던 시기의 일이다.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이 기지를 운영했고 1945년 광복이 된 후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했다.

그 이전에도 용산은 외국군과 인연이 깊었다. 13세기 고려를 침입한 원나라 군대는 용산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16세기 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19세기 임오군란(1882년)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지로 이용했다.

용산은 북으로는 남산을 머리에 두고 남으로는 한강을 바로 앞에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터다. 군인들도 이 점을 주목했다. 용산에 본거지를 틀면 남산의 보호막 아래 안전을 도모하면서도 언제든지 수도 서울을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또 한강이 가까워 수륙(水陸) 양면으로 물자 보급과 병력 이동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용산은 경제적으로도 이용 가치가 큰 땅이었다. 조선시대 때 용산은 인근 마포와 함께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 조운선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세곡과 진상품을 보관하는 풍저창(豊儲倉), 군량미를 보관하는 군자감의 강창(江倉·원효로3가), 빈민 구휼을 위한 진휼청 별고(別庫·원효로4가) 등이 용산에 설치돼 운영됐다. 이로 보면 용산은 권력과 돈을 모두 갖춘 부귀쌍전(富貴雙全)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용산이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게 됐다. 주한미군이 주둔한 지 정확히 72년 만의 일이다. 대개 세상사든 땅 기운이든 한 갑자(60년)가 지나고 다시 12년이 지나면 개혁 혹은 혁신 같은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왕성한 기운과 침잠하는 기운이 반복된다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도 이와 같은 논리다.

용산이 새 주기에 들어섰다는 신호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올해 말 반환이 완료되는 용산 미군기지를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북악산 자락 경복궁에서 용산과 한강에 이르기까지 역사·문화·자연이 어우러지는 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필자의 풍수적 판단으로는 이 계획의 성공은 남산과 용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울(한양)의 풍수를 개괄하면 북악산은 주산(主山)이고, 그 맞은편짝인 남산이 안산(案山)이다. 북악산이 권력을 상징한다면 남산은 부를 상징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불끈 솟아오른 남산은 사방으로 부의 기운을 흘려보내는 형국이다.

남산 북쪽 중구 명동 일대는 남산의 재물 기운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남산 남쪽 용산 지역은 남산의 한 줄기와 서해(외국)로 이어지는 한강의 기운이 만나면서 부를 창출하는 특징이 있다. 실제 용산은 한강을 통해 외국 문물을 끌어들이는 기운이 무척 강하다. 다른 이(異人)들의 탯줄(胎)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태원(異胎院)’으로도 불리는 동네까지 끼고 있을 정도다. 이런 땅 기운을 잘 활용하면 용산은 세계적 물류와 유통의 중심축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앞으로 용산의 땅 기운을 활용하는 데 있어 이 일대에 흐르던 만초천(蔓草川)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원래 용산은 서울(한양도성)에서 청계천 다음으로 큰 만초천이 흐르고 있었다. 경복궁이 있는 인왕산 기슭에서 발원한 만초천은 서대문 사거리, 청파로, 원효로를 거쳐 한강으로 합류했다. 길이 약 7.7km의 물줄기를 따라 도로가 발달하면서 숭례문에서 용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민간시장도 형성됐다. 남산에서 이태원을 경유해 만초천 본류로 합수되는 지류도 존재했다. 현재도 용산 미군기지에는 길이 300m 남짓한 만초천이 흐르고 있다. 이처럼 만초천은 남산과 한강을 직접 이어주는 혈맥(血脈)이었다.

풍수에서 물길은 재물과 풍요를 보장하는 핵심 요인이다. 물은 재물이 새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한편 풍요의 기운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용산을 복원 및 개발할 때 1967년 복개된 만초천 또한 함께 복원하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으로 인근 상권이 살아나고 서울 도심이 활력을 되찾은 전례도 있지 않은가.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용산#풍수지리#물길#매천야록#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사업#용산 미군기지 공원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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