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그는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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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경기대 교수
이수정 경기대 교수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무엇이 선을 악으로 내모는가?’

―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필립 짐바르도가 쓴 ‘루시퍼 이펙트’란 책은 40여 년 전 그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집행했던 실험, 일명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실험은 일반 학생들을 학교 건물에 분리시켜 놓고 한 무리의 학생에게는 간수의 역할을, 다른 한 무리에게는 죄수의 역할을 시킨 다음, 2주 동안 이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려던 것이었다.

허나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연유는 이 실험에 참여한 학생 중 일부가 자신의 역할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학대행위를 하게 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짐바르도는 이 같은 현상이 비합리적인 집단규범에 굴종함으로써 발생한 결과라는 사실을 학술지에 보고하였고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 격리된 상황에서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1971년 당시에는 학계에서만 논의되었던 이 실험이 대중적인 관심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이라크전쟁 중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 헌병들이 포로들에게 끔찍한 학대와 고문을 저지른 사건 때문이었다. 미 사법부는 이 사건의 책임을 소위 ‘썩은 사과’라고 볼 수 있는 4명의 군 장교를 고발함으로써 종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에 참여한 짐바르도 박사는 본인의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하여 보통 사람들도 어떻게 악마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가 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바로 당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불합리한 군 명령체계가 선량한 병사들을 ‘썩은 사과’로 만드는 ‘썩은 상자’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즉, 환경이 인간의 본성을 얼마든지 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이 문제행동을 보이면 그들에게 기질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짐바르도 박사의 주장을 참조하자면 오히려 오류일 수 있다. 즉, 문제행동의 원인은 어쩌면 그를 괴물로 만든 환경에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썩은 상자’란 개념은 바로 이 환경의 부조리함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이유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영학 사건을 보면서 그는 정말 괴물로 태어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불법행위인 성을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는 우리의 세태,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만 취급하는 금전만능주의, 한국 사회의 이 같은 부조리가 모두 합쳐져 이영학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야말로 문란한 우리의 세태가 ‘썩은 상자’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필립 짐바르도#루시퍼 이펙트#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영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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