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열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마무리하고 한중관계를 정상화하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사드 배치에 대해 여전히 ‘한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고, 문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아직도 사드의 철수를 주장하며 우리 정부의 ‘조속한 관계 회복’ 기대에 관망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 31일 양국 간 사드 합의에 따라 일단 갈등을 봉합하고 정상 차원에서 관계 복원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중 양측이 발표한 회담 결과 브리핑은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 당초 사드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시 주석은 “역사와 양국 관계, 양 국민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미 배치된 사드도 중국이 양해한 것은 아니며, 사드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한미일 3국 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3불(不) 원칙’에도 쐐기를 박겠다는 태도였다.
이에 문 대통령은 “중국의 우려를 중시한다. 중국의 전략 안보이익을 해칠 의도가 없다”며 10·31 합의를 재확인했다지만 시종 해명하는 모양새였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내용도 없다. 문 대통령의 내달 중국 방문은 합의됐지만, 시 주석의 평창 겨울올림픽 방한 등 답방은 정해지지도 않았다. 청와대가 ‘양국 관계의 조속한 회복에 합의했다’고 했지만 중국 측 발표엔 그런 내용도 없다. ‘불안한 봉합’인 셈이다.
10·31 사드 합의에 이은 정상회담으로 한중 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11일 중국 ‘독신자의 날(광군제)’ 할인행사 광고 모델로 한류스타 전지현이 등장한 것을 두고도 사드 보복의 해제 아니냐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중국이 단체 관광비자를 허가해 주거나 한한령(限韓令)을 풀려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 태도를 지켜보겠다며 압박하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의 ‘3불 원칙’은 국내에서 안보주권 포기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왔고, 미국 정부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이 항공모함 3척을 투입하는 한미일 3국 연합훈련을 제안했지만 한국의 반대로 한미, 미일이 각각 훈련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중국 눈치 보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중관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안보 문제까지 양보하면서 매달릴 일은 아니다. 미국 등 주변국과의 긴밀한 조율 속에 풀어가야 한다. 살얼음판일수록 주변을 살피며 차분히 걸음을 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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