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달랐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굶고 싶으면 굶으며, 원하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아이가 생긴 다음부터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공동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예전의 자유로웠던 나를 그리워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지금의 예쁜 아이는 없을 것이다. 역시 엄마가 되길 잘했다.
내 인생이지만 모든 의사결정이 아이 중심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사 갈 때는 무엇보다 주변에 공원과 놀이터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의외로 놀이터보다 노인시설이 많았다. 처음 살았던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는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노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대부분 동네 청소년들이나 커플 차지였다.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였던 셈이다.
두 번째는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에 살았다. 역 근처에 많은 아파트에 살지 않고 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아파트 놀이터를 이용하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울고, 그런 아이에게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함께 울기도 했다. 놀이터는 아쉬웠지만 집 근처 독립문공원은 꽤 큰 편이었고 산책길도 있어 정말 좋았다. 이곳에 아이들을 위한 시설은 공원 안 도서관 앞에 있는 아이들이 타기 좋은 미끄럼틀이 전부다. 공원에 있는 시설들의 대부분은 성인들을 위한 운동 시설이었다. 정류장과 전통 시장 근처에도 성인을 위한 운동 시설이 많았다.
전에는 한국인들의 장수 비결 중 하나가 운동이며, 어디서든 운동할 수 있게끔 운동 시설을 여기저기에 설치해 놓은 한국 정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을 위한 복지도 필요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에 대한 복지가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들을 위한 시설은 넘쳐나는데 왜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은 부족한지 물어보면, 누군가는 아이들은 줄고, 노인들은 늘어나는 추세라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도 한다. 나도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만약 아이들에게 선거 투표권이 제공된다면 놀이터가 이토록 없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이사 간 곳은 서울역 부근이다. 이곳에는 놀이터가 4곳 있었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한 곳에 그쳤다. 나머지 세 곳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은 노숙인들 때문이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한 곳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만약 다시 이사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제는 서울 중심에서 조금 떨어지더라도 놀이터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유료 실내 놀이시설들이 있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은 이런 곳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워할 부모도 있겠지만 이런 곳은 이용료가 만만치 않다.
한국의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도 저출산 극복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중 얼마만큼 실제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혹시 별 효과도 없고, 피부로 느끼지도 못하는 정책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돈만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녀를 가진 젊은 부모들 입에서 “애 키우는 데 별로 힘들지 않은데? 생각보다 이런저런 필요한 도움을 잘 받고 있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면 저출산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은지, 일반 주택에 사는 사람이 더 많은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 얘기를 듣거나 뉴스를 보더라도 대개 아파트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복지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없는 사람들은 더 키우기가 힘들다. 놀이터 하나라도 더 없는 사람들을 배려한 제도나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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