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신부용]불합리하고 위험한 교통섬, 총독부 잔재가 근본 원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6일 03시 00분


신부용 전 교통연구원 원장
신부용 전 교통연구원 원장
교통섬은 차량의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 처리나 보행자 도로 횡단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교차로 또는 차도의 분기점 등에 설치하는 섬 모양의 시설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통섬이 도쿄나 런던에 비해 두 배 이상 넓어 오히려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는 지적이 있다.

교통섬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우회전 차선의 곡률이 완만해지기 마련이고, 자연히 고속 주행을 유도해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교통섬을 길 안쪽으로 돌출시켜 차량이 회전할 때 별수 없이 천천히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되지만, 이는 우회전 차선 하나를 잡아먹게 되어 병목현상과 다른 형태의 교통사고를 유발할 것이다. 이제 이런 땜질식 개선 방안을 벗어나 애초에 왜 이런 교통섬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한다.

우리 도시는 택지 개발 혹은 주택단지 개발 공사를 통해 발전한다. 주택단지를 개발하려면 당연히 입주민의 생활을 배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필자가 살던 캐나다는 자치구별로 교육청이 거주 인구수를 꾸준히 모니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택단지가 들어설 경우 입주하게 될 아동수를 예측할 수 있으며, 일정 수의 아동에 대해 학교 부지를 제공하고 아동들이 절대로 큰길을 건너 등교하는 일이 없도록 도로를 계획한다. 이 외에도 일정 인구수를 위해 교회나 주유소 등 생활편의시설의 위치를 적절히 배치하는 등의 규정들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우리의 경우 도로에 관한 유일한 규정은 폭 70m 이상의 ‘광로’를 1km 간격으로 계획하고, 이 구획은 다시 30m 이상의 ‘대로’로 나눠 격자형 가로망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도로의 교차점에서는 일정한 방법으로 가각을 정리해서 추후 교차로를 건설하도록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광로 간 교차로에는 엄청난 넓이의 교차로 부지가 잡히게 되고 자치단체가 개입하여 넉넉하게 교통섬을 만든다. 그 후 경찰이 교통신호를 설치한다. 교통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나 이미 세부설계까지 마친 뒤라 주차장을 증설하라든지 진입구를 넓히라는 등의 사소한 개선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도시를 가나 비슷한 모양의 광로와 격자형 도로망, 광활한 교차로가 있는 것은 이 같은 국토교통부 도로설계 편람의 규정 때문이다. 격자형 도로망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데, 부끄럽게도 우리는 조선총독부 도로훈령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도로와 주택 개발을 각각의 담당 행정부서가 개발 단계별로 관장하고, 총괄 계획을 전담하는 조직 하나 없이 바로 건설을 하다 보니 인구와 차량의 증가에 따라 교통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런 문제를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려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효과 없는 규제만 빈발하는 것이다.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대국답게 모니터-예측-계획-설계라는 보편적 행정절차를 따르도록 행정을 선진화해야 한다.

신부용 전 교통연구원 원장
#교통섬#보행자 교통사고#도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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