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세월이 흘러도 제가 쓴 책이 잊히지 않고 팔리는,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는 겁니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 박사는 스테디셀러 작가의 원조입니다. 방대한 양의 프로이트 전집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돼 팔려 왔습니다. 그중 ‘꿈의 해석’은 1899년에 출간됐으니 백 살도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세계 사람들이 사서 읽습니다.
‘꿈의 해석’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만 참고 읽으면 꿈이 무의식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잠에서 깨어나 기억하는 꿈은 발현몽(發顯夢)입니다. 발현몽의 원본은 잠재몽(潛在夢)입니다. 서로 아주 다릅니다. 잠재몽의 재료는 꿈을 꾼 사람의 무의식, 최근 경험, 수면 중 생리적 자극입니다. 그러면 잠재몽을 왜 기억할 수 없을까요? 방어기제들이 의식의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해서입니다. 의식이 받아들이기에 잠재몽 내용이 창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끔찍하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내용을 뒤집고, 합치고, 엉뚱하게 연결해서 새롭게 합니다. 그것을 영화의 최종 편집처럼 다듬으면 발현몽이 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 대해 심한 적개심을 가진 아들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기억하는 꿈이 다음과 같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전혀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내게 욕을 하다가 나를 때려서 내가 그 사람을 겨우 밀쳐내고 갈 길을 갔다.” 꿈속의 낯선 남자는 방어기제로 정체를 흐린, 꿈꾼 사람의 아버지입니다. 정신분석의 꿈의 해석은 발현몽을 거꾸로 탐색해서 잠재몽에서 꿈꾼 사람의 무의식적 갈등과 그 갈등을 덮은 방어기제들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고속도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정신분석에서 꿈의 위상은 환상(幻想)과 겨우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축소됐습니다. 꿈을 다루는 방식도 꽤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꿈 이야기 속의 물건이나 내용 각각에 일일이 연상을 하게 하는, ‘바다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은? 어머니!’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이제는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꿈의 내용보다는 꾼 꿈에 대해 느낀 감정을 탐색하기도 합니다. 또는 꿈을 보고한 시점이나 방식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세월이 흘러 1977년이 되자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에 미국 정신과 연구자 두 사람이 과격하게 도전을 했습니다. 정신분석가들은 격분하고 분노했습니다. 하버드대 정신과에서 뇌기능 연구에 매진해 온 두 교수, 앨런 홉슨과 로버트 매칼리가 도전자였습니다. “꿈은 뇌간(腦幹)이 스스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낸 신호를 전뇌(前腦)가 멋대로 해석해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꿈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며 말이 안 된다! 꿈 내용이 기괴한 것도 뇌의 작용으로 다 설명이 된다.”
홉슨 교수는 최근 국내 방송에서 방영한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제가 주도해서 그를 한국에 초청해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 두 사람이 격론을 벌인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에게 자기 이론만을 내세워 정신분석의 꿈 이론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말고 통합점을 찾자고 주장했었습니다. 아직 수많은 사람이 여러 나라에서 ‘꿈의 해석’을 사서 읽고 가르치고, 정신분석 진료 현장에서 환자를 돕기 위해 꿈을 활용하고 있다면 동물실험이 주를 이루는 연구들의 결과만으로 그리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세월이 또 흘러 2000년이 됐습니다. 프로이트, 홉슨에 이어 제3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크 솜스입니다. 신경심리학을 공부한 정신분석가로, 뇌손상 환자들을 연구해 자신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수면생리 연구에서 늘 꿈으로 간주되는 렘수면(급속안구운동 수면)과 꿈 자체는 겹치기도 하나 서로 독립적인 부분도 있으니 꿈과 렘수면을 100% 동일시한 홉슨 등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정신분석가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솜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미 렘수면을 만들어 내는 뇌간이 손상된 환자들도 꿈을 꾼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습니다. 일약 프로이트학파 꿈 이론의 구원자로 떠오른 그는 ‘신경정신분석학’이라는, 뇌와 정신분석 사이의 연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를 창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도 솜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간의 제 연구 경험으로도 뇌간이 만들어 내는 렘수면만으로 꿈 전체의 정신분석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렘수면이 아닌 수면단계에서도 꿈을 꾼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단, 렘수면에서 나타나는 꿈이 동영상 수준으로 자세하다면 그 밖의 수면단계에서 꾸는 꿈은 사진과 같이 짧고 간결하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요약하면, 꿈은 뇌간뿐 아니라 대뇌피질에서도 생성되며 꿈꾸기라는 현상이 단순히 뇌간이 만들어 낸 잡음 덩어리(‘개꿈’) 수준이 아니고 깊은 의미가 있는 복합적인 심리적·신체적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말들이 다 다르니 혼돈스럽기는 합니다. 뇌 연구의 발전이 눈부시니 가까운 장래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매우 궁금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으로 실시간 연구하는 일이 가능해서 이미 꿈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입시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한 것을 장기기억으로 굳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공부를 한 직후에 반드시 잠시라도 잠을 자야 공부한 내용이 뇌에 저장돼 오래 기억됩니다. 밤을 새워 공부했어도 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고 미처 저장하지 않은 파일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물론 잠에는 렘수면과 깊은 잠이 모두 포함됩니다. 잠을 아껴서 마련한 시간에 공부해 성적을 올린다는 말은 정말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꿈이 앞일을 알려줄까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閑中錄)’에 보면 남편인 사도세자의 꿈에 흑룡이 나온 뒤 나중에 정조가 되는 아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꿈의 예지 능력에 관해서 누군가는 “무의식의 기능으로 미루어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소망했으면 꿈에도 나오겠느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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