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전문기자의 사진 속 인생]죽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이종승. ‘죽비’. 2005년
이종승. ‘죽비’. 2005년
죽비(竹L)는 불가에서 주로 예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를 할 때, 혹은 참선할 때 집중력이 흩어진 수행자들을 경책하는 데 쓴다. 참선할 때 쓰는 죽비는 장군죽비라 하는데 보통 죽비보다 길이가 2, 3배 길다. 절에서 참선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장군죽비 소리에 자세와 마음을 다잡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죽비를 방 안에 걸어 놓은 스님들을 간혹 본다. 수행의 자세가 흐트러짐을 경계하기 위해 일부러 눈에 띄는 데 놓은 것이다. 방 안의 죽비는 방 주인을 긴장하게도 하지만 그것을 보는 타인들에게도 마음을 다잡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죽비는 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좌중의 마음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또 몇 번의 내리침만으로도 효과를 보는 이유는 마음이 마음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죽비는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물건이 아니다. 죽비는 아주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기에 그 권위가 있다. 절집에서 죽비는 있어야 하는 자리에만 있다. 죽비를 들고 활보하는 스님은 보기 힘든데, 절은 수행하고 기도하는 곳이지 허물을 찾아 징벌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님이 예식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죽비를 치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기자는 세 번만 치는 이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법당 밖에서 망원렌즈를 끼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셔터 소리가 죽비 소리에 묻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찍어야 되기 때문이었다.

사찰 사진은 불교 지식, 피사체와의 교감, 촬영자의 마음가짐이 그 질을 좌우한다. 절에서는 촬영이 허용되는 구역과 촬영금지 구역을 정해 놓고 있는데 법당과 스님들의 거처는 예외 없이 촬영이 안 된다. 스님들을 찍을 때는 양해를 구하고 찍어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절에는 건축, 음식, 의복, 온돌 등 한국 문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한데 모여 있다. 스님만 찍기를 고집하기보다는 탑, 석등, 풍경, 문살, 법고 등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에 카메라를 대보자. 혹시 인물을 찍을 경우가 생긴다면 얼굴이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뒷모습, 옆모습 혹은 풍경 속의 일부로 표현하는 노력을 해보길 권한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죽비#사찰 사진#인물을 풍경 속의 일부로 표현하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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