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꽃처럼 아름다운 낙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21> 왕벚나무

꽃에 가려졌지만 왕벚나무의 낙엽도 꽃만큼 아름답다.
꽃에 가려졌지만 왕벚나무의 낙엽도 꽃만큼 아름답다.
장미과의 갈잎큰키나무인 왕벚나무는 꽃이 벚나무 꽃보다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왕벚나무는 일본어로 ‘사쿠라(さくら)’라 불린다. 일본의 마쓰무라 진조(松村任三·1856∼1928)가 붙인 학명(Prunus yedoensis Matsumura)에는 원산지를 에도(江戶·도쿄)로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왕벚나무를 ‘동경앵화(東京櫻花)’라 부른다. 왕벚나무에서 사용한 한자 ‘앵(櫻)’은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앵도(櫻桃)를 의미하지만, 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섬벚나무 등 벚나무의 한자에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왕벚나무를 일본에서 수입한 나무로 이해하고 있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전남 해남에서 자생한다. 그래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천연기념물 제156호와 제주시 봉개동 천연기념물 제159호,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천연기념물 제173호의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자생 식물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아주 높기 때문에 특별히 보존해야 한다. 자생하고 있는 왕벚나무를 직접 본다는 것은 단순히 한 그루 나무와의 만남이 아니라 문화재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이처럼 나무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다.

왕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다섯 장의 꽃잎은 백색 혹은 연한 홍색을 띤다. 다섯 장의 꽃잎 뒤에는 다섯 장의 붉은색을 띠는 꽃받침이 있다. 왕벚나무는 요즘 우리나라 가로수로 각광받고 있는 나무다. 지자체에서 꽃을 선호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봄철 행사를 만들기 위해 많이 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벚나무의 꽃이 지고 나면 이 나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왕벚나무에 대한 사랑은 꽃만이 아니라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왕벚나무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낙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김소월은 ‘부모’라는 시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라고 했지만, 낙엽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낙엽은 떨어진 잎이기 때문이다. 붉은색 계통과 노란색 계통의 색깔로 물드는 왕벚나무의 낙엽은 꽃처럼 아름답다. ‘처럼’은 생명체의 가치를 평등하게 인식하는 생태의식의 출발에서 중요한 조사(助詞)다. 왕벚나무의 낙엽을 꽃처럼 사랑하는 것은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보듯 절대적 가치를 상대화시키는 ‘보다’의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삶의 태도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왕벚나무#장미과 갈잎큰키나무#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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