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조현일]특별한 제주 집들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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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
제주 원주민들의 집들이는 오전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진행된다. 도시처럼 모임별로 분류해 따로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돌잔치나 결혼식 피로연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성대하게 초대한다. 육지와 달리 사람들은 중요 행사처럼 부조봉투를 건네고 집주인은 답례품까지 건네준다. 이웃 원주민 형님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다가 도시에서처럼 화장지와 간단한 선물을 들고 갔다가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 민망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집들이도 결혼식, 장례식과 같이 중요한 가족의 행사로 생각하며, 상부상조하는 풍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집을 완성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을 모시고 집들이를 했다. 아내와 직접 지은 집에 좋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삼 제주에 온 뿌듯함을 느꼈다.

대화의 주 화제는 모 예능프로그램 촬영지였던 집 근처의 한 식당이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방송 촬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를 두고 환영을 하는 사람도,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생겼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제주를 기억하며 머무는 사람들은 “예전의 제주가 아니다” “변해가는 제주가 너무 안타깝다”고 비판한다. 시골 마을의 경제적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도 제대로 평가받고 살 만한데, 옛날 모습만 간직하면 어떡하냐” “어차피 뜨내기 육지 것들이나 조용하고 한적한 걸 좋아하지, 마을에 살면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중 귀농의 비중은 아주 적다. 거의 대부분의 이주민이 관광객을 상대로 카페 음식점 등을 운영한다. 자신들의 영업장소 주변엔 유동인구가 많아졌으면 하면서도, 다른 곳은 한적한 모습을 간직하길 바란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다.

집들이가 끝날 때까지 양쪽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서로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관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또한 아름다운 자연 속의 한적함에 반해 제주 이주를 결정했지만, 제주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난개발이 아닌 천혜의 자연을 지키고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개발은 필요할 것이다. 조그마한 땅이라도 돈만 된다면 개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육지 사람이다. 이런 얌체꾼들로 인해 제주로 순수하게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원주민들과 마음 열고 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제주의 조용한 서쪽마을 한경면, 그중에서도 중산간 쪽에 위치한 우리 집은 처음 기초를 세울 때에는 주변에 집 한 채뿐인 고즈넉한 곳이었다. 지금은 매년 아니 매달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건물만 짓고 바로 분양해 버리는 집장사들로 인해 한적함은 점차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집에 좋은 마음을 가진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들어온다면 한적함을 잃어버리는 대신 포근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현일

※필자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2년 전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하고있습니다.
#제주의 서쪽마을#한경면#제주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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