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와 비합리가 공존하는 사람 마음
이성과 감성도 뜻대로 조절은 안 돼
한 해가 저무는 지금, 주변을 돌아보고 품어주는 사회 됐으면
그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직선의 길이를 조절하고 크기가 다른 사각형을 질서 있게 배열한 피터르 몬드리안의 작품이 있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불구불한 선과 비정형적 형태와 얼룩진 색채 자국들이 뒤엉킨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이 있다. 몬드리안 작품이 우리를 차분하게 해준다면, 칸딘스키 작품은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작품이 더 즐거움을 주고 감동적인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고, 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몬드리안은 삶의 법칙성과 조화를 기하학적 선과 형태로 나타내려 했고, 칸딘스키는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성이나 활기참을 색채와 선의 자유분방함으로 나타내려 했다. 똑같이 삶과 세계를 대상으로 하지만 접근하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이성적이라는 점에서 차가운 추상으로 불린다면, 칸딘스키의 작품은 감성적이라는 점에서 뜨거운 추상으로 불린다. 이것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다른 미술양식들에도 적용된다. 수학적 원근법과 균형을 강조한 르네상스 미술과 불균형적 구성과 화려함이 두드러진 바로크 미술이 그렇고, 규칙을 강조한 고전주의와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한 낭만주의가 그렇다. 이렇듯 이성적 특징의 작품들과 감성적 특징의 작품들이 대립과 보완 관계를 나타내면서 미술의 역사는 이루어졌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시카고대의 리처드 세일러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심리가 경제적 선택이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인데, 주류 경제학이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실제 행동에는 숙고하면서 계획하는 합리적인 모습도 있지만 직관적이며 통제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모습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이라 한다.
이 두 가지가 인간의 행동에 함께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경제 현상을 보자는 것이며, 경제 주체들이 때로는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때로는 감정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일러 교수는 합리적 효율성으로 설득하기보다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넛지’ 이론을 주장했고, 비합리적이고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사람들의 결정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만들어냈다. 경제적 행동의 설명에도 인간의 합리적인 측면과 비합리적인 측면이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세일러의 이론이 필자의 관심을 끈 이유는 인간의 양면성이 예술과는 한참 먼 것처럼 생각했던 경제학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우리가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이라는 마음의 능력도 갖고 있고,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삶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 감정을 앞세워 해결하려 하는 일이나 감정적 공감으로 풀어나가고 웃어넘길 수 있는데 논리를 들이대고 따져드는 일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일이 뜻대로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유난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해도 저물어 간다. 새 정부가 들어섰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지금도 우리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낡은 정치와 부패한 일부 특권층이 우리를 화나게 했고, 사회적으로도 가슴 아픈 일, 안타까운 일, 애석한 일, 답답한 일 등 많은 사건이 있었다. 사회가 우리를 차갑고 냉정하게 만들기도 했고, 뜨거운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순간은 잘 떠오르지 않는 한 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많은 일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지금부터 앞으로의 한 달이 이성과 감성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나 있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고, 불행과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는 삶의 모습과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은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뜨거운 가슴으로 보듬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필자 주변부터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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