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특허청장 회담을 위해 찾은 항저우에는 작년 중국 최초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여운이 짙게 배어 있었다. 도시 곳곳에 정상회의 축하 포스터와 홍보 문구가 남아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의 고사를 한가득 담은 시후(西湖)의 특설공연장에는 중국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G20을 위해 특별 제작했다는 수상공연이 아직도 매일 열리고 있다.
항저우를 성도로 하는 저장성 당국의 안내로 도시 동쪽에 자리한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해 볼 수 있었다. 광군제 하루 매출액 28조 원을 기록하는 등 중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알리바바가 수천 년 고도(古都)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써 가는 듯했다.
중국의 변화는 특허 분야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여정에 한국이 함께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번 특허청장 회담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중 양국이 ‘공동심사 시범사업(Collaborative Search Pilot·CSP)’을 조만간 시작하기로 합의한 것이 가장 으뜸가는 성과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 같은 발명을 출원한 경우 해당 발명에 대해 각 특허청이 조사한 선행기술 정보를 공유해 심사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CSP가 신청된 출원은 더 빠르게 심사해주니, 발명자 입장에서는 조기에 품질 좋은 심사 서비스를 받는 이중의 이익을 얻게 된다.
사실 CSP는 2014년 세계 최초로 한국 특허청이 제안한 심사협력 프로그램이다. 국제적으로 특허출원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으로 심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고민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한국은 세계 특허출원 2위인 미국과 이미 2년 전부터 CSP를 시행해오고 있다. 이제 세계 특허출원 1위인 중국이 이 제도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선택했으니 한국은 세계 2대 특허출원국과 모두 CSP를 하게 되는 유일한 국가가 된 셈이다.
이 외에도 한중 특허청은 양국 디자인 출원인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 우선권 서류를 전자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 데도 합의했다. 이것 역시 아직까지 전례가 없는 협력 사업으로 서류 제출에 소요되는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성과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 특허청은 10년 전부터 미국, 중국, 일본, 유럽 특허청과 함께 ‘선진 5개 특허청 협의체(IP5)’를 구성하고 있다. 적어도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 4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상은 한국이 출원 건수 기준 세계 4위라는 양적 요인 덕분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특허제도의 발전을 위해 우리 특허청이 책임감 있게 노력해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IP5 체제에서 지난 10년간 한국 특허청은 심사 협력, 국제심사정보 통합조회시스템 구축, 특허제도 조화 등 굵직한 국제적 이슈에서 우리 출원인의 편의를 높이고 세계 지식재산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기여해 왔다.
항저우는 수양제가 베이징부터 연결한 경항(京杭) 운하의 종착점으로 번성했던 상업도시였다. 이제 이 도시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의 야심 찬 전략인 ‘e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과거의 번영과 미래의 혁신을 잇는 상징적인 장소가 돼가는 것이다. 어쩌면 지식재산도 과거부터 진행되어 온 혁신의 노력을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주는 고리가 아닐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혁신성장으로 헤쳐 나가려는 한국이 지식재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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