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로 私기업 경영개입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0시 00분


국민 노후자금 600조 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 방침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조짐을 보이면서 관치(官治)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국민연금이 내년 초 기업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기로 하면서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행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결정 과정의 독립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적지 않다.

연기금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면 경영 투명성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임명하는 현재의 국민연금 지배구조는 정치 논리에 좌우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기금운용본부가 복지부에 사실상 종속돼 있는 터라 그동안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던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독립성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만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정부 입맛대로 주요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은 275개 상장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삼성전자 포스코 네이버 등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 자리를 꿰찬 매머드급 기관투자가다. 현재 논의 중인 스튜어드십 코드안대로 국민연금이 사외이사와 감사 후보를 추천한다면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이사회에서 배제하고 친정부 인사를 선임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제시했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이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노동이사에 찬성표를 던진 것을 경영 간섭의 전조로 보고 있다. 여당이 공공기관의 노동이사 도입을 의무화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를 밀어붙이면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럽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의 이원적 구조로 운영하며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석하고 있다. 이처럼 경영 간섭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도 없이 노동의 경영 참여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될 판이다.

문 대통령도 초반에는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를 강조했지만 지금은 의지가 많이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공적연금 GPIF는 의결권을 외부 자산운용사가 직접 행사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더구나 국민연금 자금으로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갉아먹을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연금이 정치와 정권의 입김에 흔들린다면 2200만 가입자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 노후자금#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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