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두 달여 만에 꺼내든 첫 사법개혁 방안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다. 기존 인사 패턴대로라면 내년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 첫 고법 부장 승진자를 배출해야 할 사법연수원 25기 법관들에 대해 고법 부장 보임 심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어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는 아니다. 대법원은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을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로 분리하는 ‘법관인사 이원화’를 시행하기로 하고 2010년부터 고법 부장 승진과 별도로 고법판사를 보임해왔다. 이제는 시행 초기에 보임된 고법 판사들의 사법연수원 기수가 고법 부장 승진 대상자와 엇비슷해졌으니 고법 부장 승진을 중단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대다수 판사는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를 반기는 분위기다. ‘지방법원 배석판사-단독판사-부장판사-고법 부장-법원장’으로 이어지는 법관 서열에서 고법 부장은 유일하게 심사와 승진이 이뤄지는 자리다. 지법 부장판사까지는 시간만 흐르면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고법 부장은 그렇지 않다.
승진자와 탈락자가 갈리는 인사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기 마련이다. 고법 부장 승진을 앞둔 지법 부장판사들이 대법원장 눈치를 보느라 소신껏 판결을 하지 못한다는 법관들의 우려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고법 부장 승진제도를 당장 없애는 것이 옳은가는 의문이다. 승진제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일단 법관이 되면 평생 다른 법관과 비교당하거나 경쟁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재판을 게을리 하는 판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은 당장 예상 가능한 문제다. 법관은 탄핵을 당하거나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이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한 신분 보장을 받는다.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는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판사 신분을 박탈하는 연임심사도 헌법상 10년에 한 번만 할 수 있다. 판사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삐딱하게 굴면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
고법 판사 보임이 고법 부장 승진 심사처럼 ‘필터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맡는 재판의 심급이 달라지는 것이 전부인 고법 판사 보임이 행정부처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법 부장 승진과 비슷한 수준의 ‘당근’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를 찾기 힘든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좋은 재판’을 기대하라는 것은 그저 법관의 선의(善意)에 기대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법원 내부에서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는 국민을 위한 개혁은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관 인사 주기를 장기화하겠다고 밝힌 점도 걱정스럽다. 법관이 한 법원에 오래 근무해야 안정된 환경에서 재판에 전념할 수 있다는 행정처의 주장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잦은 이사에 지친 법관들의 푸념에 치우쳐 있다. 기존에 법관들의 인사 주기가 짧고 경향 교류가 잦았던 데에는 지역 사회와 부적절한 유착 등 법조비리를 막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법관 인사 주기에 손을 대려면 그런 문제를 예방하고 공정한 재판을 할 방안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법관 인사제도 개선 논의는 사법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져야 하고 법관의 민생보다는 국민의 이익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를 평가할 사람은 법관이 아니라 법률 서비스의 이용자인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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