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매력으로 넘쳐납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TV 화면에서도 매력 만점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궁핍했던 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대한민국 매력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겁니다. 해외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은 세련된 옷차림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세상이라면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배려와 사랑이 넘쳐나야 되지 않을까요? 기대는 빗나가고 현실은 삭막합니다.
매력은 불꽃이나 향수와 같이 퍼져 나갑니다. 끌림 현상을 뇌의 화학반응으로 설명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매력을 느끼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외모 머리 행동 성격 직업 배경 어디에서 매력을 느끼시나요? ‘미녀와 야수’처럼 유별난 점에 나만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매력의 대상을 나누면 몸 마음 행동입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진화론적으로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창백함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각적인 옷차림, 명품 착용, 성형수술로 몸을 얼마든지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매력은 훨씬 더 오래갑니다. 진중한 사람보다는 쾌활한 사람이 훨씬 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쾌활한 사람과 사귀려면 경쟁률이 높아 보입니다. 실체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중한 사람에게도 기회는 보장됩니다. 진중한 사람의 좋은 무기는 상대에 대한 공감입니다.
행동에서는 배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 주는 게 배려입니다. 날씨와 무관하게는 미소가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전문가입니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직접 만나 보았더니 전직 미국 대통령 중 어떤 분이 무릎을 낮추고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면 이끌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정적 매력에 일단 끌려들면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서 ‘자기애(自己愛)’라고 하는 비밀 병기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애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의 젖은 세상 전부입니다. 조금만 보채도 입안으로 젖이 들어오니 아기는 스스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자라서 어린아이가 되면 다음처럼 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큰 지진이 났을 때 어린 아들이 아빠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그런 게 아니야!”라고. 자기애는 과대망상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착각은 자라면서 점점 깨집니다. 하지만 어른의 마음에도 흔적은 남아 움직입니다. 바람직한 자기애는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려는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어른인데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집착을 가지면 지나친 겁니다. 더 심하면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됩니다.
열정으로 시작된 사랑의 끝이 모두 실패는 아닙니다. 매우 친밀한 관계도 평생 지속될 수 있습니다. 단, 관계가 뜨겁게 시작될수록 결과는 상처뿐일 확률이 높습니다. 사례를 만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녀에게 그가 다가옵니다(이하 남녀의 입장이 바뀌어도 동일). 그의 존재는 어느새 그녀의 생활에서 중심이 됩니다. 만남은 기본이고 잦은 전화, 이메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치 한집에서 사는 듯 느껴집니다. 그는 그녀에 대해 칭찬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그녀의 자존감은 하늘 높이 솟구칩니다. 드디어 평소 꿈꾸던 동화 속 공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녀가 그에게 헌신해야 할 것 같은 사명과 책임을 느낍니다. 그녀는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줍니다.
어느 날 평소와 달리 그는 그녀에게 자꾸 트집을 잡습니다. 그녀가 그러했기에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저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동안 그렇게도 칭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가 하는 말들을 그녀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깊이 반성하고 더 잘하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응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기분이 좋으면 이전처럼 그녀에게 과도한 칭찬을 하지만, 다른 때는 여전히 그녀의 탓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이제 관계는 괴롭고 슬픈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녀는 비탄과 우울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의 기대와 소망에 맞출 수 없는 자신을 미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닫습니다. 그에게 너무 노예처럼 매여 있지 않은지…. 어느 날 그가 연락을 끊습니다. 그의 지인들이 그녀를 비난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그가 그녀를 버린 겁니다.
그가 칭찬을 베풀고 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항상 그의 옆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녀만이 그의 누구였다는 환상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늘 그렇게 살아온,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그녀는 그저 다수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는 그런 말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실패한 관계에서 그녀의 잘못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초점은, 그럼에도, 열정적 관계는 쉽게 식을 확률이 높고 그 뒷모습에는 관계를 열정적으로 점화시킨 그의 자기애가 작동했다는 겁니다. 이런 관계가 종말을 맞았다면 그녀는 계속 상처받고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나요? 그의 자기애가 정해진 순서를 밟아 생긴 필연적인 결과라고 이해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 보았자 자신의 삶이 낭비되는 것 아닐까요?
건강한 관계란 반드시 내 자신의 강점 위에 세워야 합니다. 매력적인 상대방이 내게 잠시 베푸는 것에 아무 생각 없이 매달리다가는 기초 없는 건물처럼 사소한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순리가 아닌 관계는 늦기 전에 정리해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쓰면 쓸수록 손해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지키는 겁니다.
건강한 관계는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세운 두 기둥 위에 같은 지붕을 얹는 겁니다. 무리하게 합친 한 기둥의 건물은 결국 쓰러집니다. 내 정체성을 존중해야 진정한 나의 동반자입니다. 내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사람은 나를 자기의 노예로 만들려는, 자기애의 중독자입니다.
춥고 쓸쓸한 계절이 이미 닥쳤습니다. 쉽게 뜨거워져서 잘못 쓰면 화상을 입는 난방법보다는, 느려도 안전한 방법으로 체온을 잘 보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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