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경종의 이복동생이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악행을 숙종에게 고발해 생을 마감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왕세자였던 경종과 왕세제였던 영조의 사이는 어머니들만큼 불편했다. 경종수정실록에는 ‘왕세자의 내시 박상검이 매일 밤 출입문을 닫아 왕세제가 경종에게 문침(問寢)하는 길을 막았다. 불화를 조성해 왕세제를 제거하려 했다’고 쓰여 있다.
살얼음판을 걷던 왕세제 시절, 영조는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경종 재위 2년, 실록은 ‘박상검이 사형된 직후 영조가 식욕부진과 권태, 무력감, 피로감을 호소해 자음건비탕을 처방했다’고 적고 있다. 자음건비탕은 대표적인 소화기질환 치료제로, 당시 의관들은 이런 증상의 원인을 소화기 부실에서 찾았지만 지금으로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긴 어지럼증이 분명하다. 실록을 살펴보면 대신들이 대부분 사직할 때는 어지럼증을 핑계로 댄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어지럼증을 느낄까. 그 기전은 어릴 때 한 번쯤 해봤을 코끼리 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코를 잡고 뱅뱅 돌다보면 어지럽고 속이 미식거린다. 이는 평형을 유지하는 귓속의 전정기관(전정과 세반고리관)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림프액의 움직임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몸이 회전하면 그 안의 림프액도 따라서 돌게 되는데 회전을 멈춰도 림프액은 관성에 의해 계속 돌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몸이 회전을 멈췄지만 전정기관의 림프액이 돌고 있어 회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우리 몸은 본디 평형이 무너지면 어지러움을 느끼고 미식거리는 구토감이 들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한의학은 이런 어지럼증의 치료를 전정기관이 자리 잡은 귀가 아니라 소화기이자 오행 중 흙(土)에 해당하는 비위(脾胃·비장과 위장)로부터 시작한다. 오행 중 물(水)에 해당하는 림프액의 범람을 흙(비위)으로 둑을 튼튼하게 쌓아 통제한다는 개념. 비장을 튼튼하게 하는 자음건비탕을 어지럼증 치료에 쓰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 탕제에 들어가는 백출과 반하라는 약물 또한 흙 속에 있는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진다. 모두가 물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
평생 어지럼증에 시달렸던 영조는 자음건비탕에 144회에 걸쳐 천마라는 약재를 첨가하였다. 천마는 바람이 불면 가만히 서 있고 바람이 잠들면 흔들리는 특성이 있다. 바람은 하늘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한의학에서 바람은 곧 기(氣)를 의미하는데 인간의 몸은 기가 너무 없어도 너무 세도 어지러움을 느낀다. 자음건비탕이 어지럼증의 원흉인 물의 과잉을 통제하는 흙둑 구실을 한다면 천마는 바람을 잘 통제해 어지럼증을 치료하는 약제다. 예부터 한의학에선 바람(氣)의 방향을 잘 아는 의사를 명의라고 했는데 전설적인 한의학자 편작(扁鵲)이 자신이 이름을 ‘작은 까치’로 지은 것도 태풍이 올 방향을 미리 알고 집을 집는 까치의 혜안을 닮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천마는 덩이로 된 뿌리줄기를 약으로 쓰는데 영조는 평소 여기에 반하를 더해 차처럼 끓여 마셨다 한다. 천마는 정풍초(定風草)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풍기(風氣)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예부터 두통, 어지럼증, 언어장애와 이명(耳鳴)을 다스리는 데 써 왔다. 최근 천마가 뇌질환에 특히 좋다는 실험 결과가 담긴 논문이 다수 발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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