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지진 대피 수칙을 소개할 때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를 비롯한 중증장애인들은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상 아래로 몸을 숨길 수도 없고, 질서 있게 계단을 이용해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 일명 ‘어금니 아빠’인 이영학 사건 때문에 민간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후원이 줄고, 정부는 장애인정책에 소홀해지다 보니 삶의 열정마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나마 2018 평창 겨울장애인올림픽과 관련해 열린 한중일장애인예술축제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장애 시인의 시를 외워서 낭송한 것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나의 존재는 너라는 존재로 인해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너 없이 나는 아름다울 수 없는 거죠. 시인이 노래했듯이 어둠이 없이는 별이 홀로 빛날 수 없습니다. 저는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라는 그의 말에 관중은 숙연해졌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우선 생각하고 자신이 잘살기 위해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 하지만 장관이 낭송한 시를 쓴 김대원 시인은 ‘내가 어둠이라면 당신은 별입니다’라는 시를 통해 사람은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서로 도우며 상생해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35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홀로 시를 쓰며 살아온 중증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을 관망하면서 내뱉은 충고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여전히 실업률이 높고, 경제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장애인 실업률은 일반 실업률의 2.5배이고, 장애인의 빈곤율 역시 일반 빈곤율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대통령 일자리 공약에 장애인을 위해 어떤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는 보이지 않으며, 그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의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문체부가 문화정책2030을 발표하면서 ‘사람이 있는 문화’를 내세운 것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인 ‘사람이 먼저다’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천부적인 인권을 가진 사람이 이런저런 제도나 미성숙한 인식 때문에 차별과 배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장애인이 무슨 배제를 당하느냐고 말한다. 지진이 났을 때 장애인은 어떻게 대피를 도와줘야 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차별이다. 정부나 국회에서 나오는 정책 뉴스에서 장애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기업 생산 제품에 장애인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입국 공항을 일반 올림픽은 인천과 양양 모두 다 열어주면서 장애인올림픽은 평창에서 가까운 양양국제공항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 등이 배제이다.
기득권을 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패배자가 되어 사회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장애 시인의 말처럼 별은 어두워야 존재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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