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4>대구 제일모직 기숙사와 女工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기숙사.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기숙사.
“그때는 제일모직이 최고였지요. 공장엔 기숙사까지 있었습니다. 기숙사 시설이 엄청 좋아 사람들이 제일대학이라고 불렀다니까요.” 제일모직 기숙사 가는 길, 택시 운전사는 그곳을 지금도 대학이라 불렀다.

1954년 대구 북구 침산동에 들어선 제일모직 대구공장. 국내 최초로 국산 양복지를 생산하던 곳이다. 대구공장은 1995년 경북 구미로 이전했다. 이후 24만7000여 m²(약 7만5000평)가 빈터로 남아있다 오랜 논의를 거쳐 올봄 복합창조경제단지 겸 문화생활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식 이름은 대구삼성창조캠퍼스.

이곳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여자 기숙사 건물 6채다. 기숙사가 생긴 것은 1956년으로, 국내 최초의 여자 직원 기숙사였다. 이병철 회장이 대구공장을 세우면서 가장 역점을 둔 공간이 여자 기숙사였다.

처음엔 3채에 진심(眞心) 선심(善心) 숙심(淑心)이라 이름 붙이고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건물을 지었다. 미용실, 욕실, 세탁실, 다리미실, 도서실, 휴게실 등 시설도 최고였다. 스팀 난방시설과 온수기도 있었다. 정원은 잔디밭으로 단장했고 나무들이 무성했다. 정원과 연못에선 공작과 꿩들이 노닐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1960년대 이 기숙사를 둘러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이 정도면 딸을 맡길 수 있겠군”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외부인들은 이곳을 제일호텔, 제일공원, 제일대학이라 불렀다. 제일모직 대구공장 여직원들은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자 기숙사는 1980년대 초까지 6채로 늘어났다. 1, 2층짜리 건물의 외벽은 온통 담쟁이넝쿨이다. 겨울인 지금도 담쟁이넝쿨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사이로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이 멋을 더한다. 옛 기숙사는 외관을 원래 모습으로 유지한 채 내부를 리모델링해 공예품을 제작 전시 판매하는 공방과 전시장, 음악창작실, 카페 등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숙사 내부를 되살린 공간도 마련했다. 기숙사 옆에는 삼성의 모체인 삼성상회(1938년 설립)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한국 근대화의 주역이었던 섬유산업. 그 역군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집에 보내고 밤에는 야학 등을 통해 공부를 했다. 제일모직 기숙사엔 그들의 꿈과 애환, 한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제일모직#제일모직 대구공장#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여자 기숙사#섬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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