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인찬]800만 달러 대북 지원금은 ‘눈먼 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황인찬 정치부 기자
황인찬 정치부 기자
정부는 9월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 뒤 석 달째 집행을 미루고 있다. 6차 핵실험 뒤 대북 여론이 흉흉할 때 북한 주민의 영양 결핍을 새삼스레 강조하며 전격 결정을 내리더니 그 뒤론 잠잠하다. “종합적 여건을 판단해 지원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일단 연내 지원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뒤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뺨 맞은 뒤 바로 악수를 건넬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대신 정부는 10일 추가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하며 압박의 끈을 다시 조였다.

800만 달러는 해가 바뀌어 집행해도 된다는 게 통일부의 판단이다. 앞서 지원 결정을 내린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를 다시 열어야 하지만, 형식상의 절차일 뿐 결정이 뒤바뀔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송금 버튼’만 만지작거리는 정부가 아직 국민들에게 꺼내지 않은 말이 있다. 인도적 지원금을 공여한 국가가 북한 현지에 가서 그 돈이 주민에게 잘 전달되는지 살펴보는 ‘독자적 분배 감시’다.

호주는 올해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단했다. 투명성 강화를 위해 독자적 분배 감시와 평가 요청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북한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원금의 용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자 아예 지원을 끊은 것이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캐나다와 스위스, 스웨덴 정부도 유엔 국제기구의 검증 외에 별도로 직접 정기적, 독자적으로 분배 감시에 나서고 있다.

물론 유엔 국제기구들은 자체적으로 분배 감시 활동을 펼쳐 그 결과를 공여국에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파견된 직원 수가 많지 않고,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은 더욱 제한적이다. 이 기구들의 평양 주재 사무소는 지방 오지에 있는 실수혜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서방 주요국은 돈만 국제기구에 전달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직접 취약계층이 혜택을 보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정부는 ‘독자적 분배 감시’란 말조차 관련 브리핑에서 꺼낸 적이 없다.

기자의 문제 제기에 통일부 당국자는 “향후 국제기구와 협의해 독자적 분배 감시의 타당성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 뒤 입장이 바뀌었다. 대변인실을 통해 “(독자 감시 없이) 기존 국제기구의 분배 감시 활동을 신뢰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진보 정권을 떠나 여태껏 북한에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 분배 감시 활동을 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때문에 북한은 우리가 건넨 돈을 ‘눈먼 돈’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정부가 연내 800만 달러를 집행한다면 올해 가장 많은 대북 인도적 지원금을 낸 나라가 된다. 내년에 집행한다고 해도 순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을 하는 서방 주요국보다 투명성 확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다가 정부가 대북 제재 국면 속에서도 지원 결정을 내린 것엔 남북 접촉의 물꼬를 뚫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독자적 분배 감시가 이뤄져 정부 인사가 북에 갈 수 있다면 북한과 직접 접촉 가능성도 커진다. 북한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도 800만 달러가 정말 제값을 하기 위해서는 독자적 분배 감시가 필요하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
#800만 달러 대북 지원#북한 대륙간탄ㄷ미사일#대북 독자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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