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추운 날에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따뜻한 손이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는데, 찬바람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아내도 추운지 제 곁에 꼭 붙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아 제 주머니 안에 넣습니다. 아내의 손은 겨울이면 늘 차갑죠.
아내가 “당신 손은 늘 따뜻해, 아직도 청춘인가 봐”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철이 안 들어서 그래”라고 대답하지만 기분은 급상승합니다. 아내와 마주 앉아 뜨끈한 순댓국을 후루룩 함께 나눕니다. 맛있게 먹는 아내를 바라보니 손도, 입도, 배도,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문득 ‘내가 어느새 꽤 잘살고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50세 이후의 삶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길입니다. 소수의, 나이를 잘 못 먹는 사람들은 외골수의 ‘꼰대’가 되지만 대부분의 성숙한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더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됩니다.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지평을 확장시키죠.)
인간은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 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정체성’을 얻어야 심리적인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발달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죠.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발달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먼저,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조절하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친밀감’의 능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다음은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직업적 안정’을 얻어야 하죠. 여기까지도 힘들지만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바로 나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 사회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배려하고 헌신적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만드는 ‘생산성’의 능력을 얻는 것이죠.
‘생산성’의 능력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발휘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보다 다음 세대를 더 위하며 보살피고, 우리가 우리 자녀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다른 젊은이들도 존중하고 공감해줘서 그들과 긍정적인 상호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때 생산성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죠. 자기애와 야망이 아니라 생산성의 능력이 존경받는 진정한 리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막말은 절대로 하지 않고 반말도 할 필요가 없는 어른이 되어야겠죠.
늘 ‘수신 제가 치국’입니다. 저는 ‘수신’이 너무 어려워서 ‘제가’부터 생각합니다. 먼저 부모님과 배우자와 친하게 살고,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자녀들에게 본이 될 수 있죠. 생산성은 집에서 숙련된 후에 집 밖으로 나오는 능력입니다. 추울 때 아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어야 밖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죠. 제 자랑이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손이 너무 차갑습니다. 아마 우리의 자녀들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예쁜 이하이도 “바람이 불어서, 마음이 비어서 차갑단 말이에요!”라고 울먹입니다. 따뜻한 손을 내밀어 ‘생산성’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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