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세형]글로벌 ‘교육허브’ 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독일 대학들이 ‘브렉시트’로 어려움을 겪을 영국 대학의 대체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독일이 유럽의 교육허브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산학협력이 활발한 독일 드레스덴공대. 동아일보DB
독일 대학들이 ‘브렉시트’로 어려움을 겪을 영국 대학의 대체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독일이 유럽의 교육허브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산학협력이 활발한 독일 드레스덴공대. 동아일보DB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대학 교육에서도 독일이 유럽의 중심지(허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이스라엘의 미래 자동차 기술과 창업경제를 취재하러 갔을 때 만난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기자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경쟁력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독일이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을 논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영국 대학들이 브렉시트로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졸업생들의 EU 국가 취업길이 줄어들고 우수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반사이익을 독일 대학들이 누릴 것이란 뜻이다. 영국이 오랜 기간 유지해온 유럽의 교육허브란 명성을 독일이 흔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유럽 기자들은 최근 독일 대학들이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발 빠르게 실행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 대학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고, 대학원을 중심으로 영어 강의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있다고 한다. ‘영어’가 더 이상 영국 대학만의 장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탄탄한 경제 구조와 풍부한 일자리, 저렴한 학비와 장바구니 물가도 독일 유학의 이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이런 이유로 독일 유학길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약 1만 명의 미국 대학생이 독일 대학에서 유학 중이라고 전했다.

영국 유명 대학인 킹스칼리지는 ‘독일의 교육허브 부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올 7월 ‘경쟁국’인 독일에 캠퍼스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유명 대학 중 독일에 캠퍼스를 만든 곳은 아직 없다. 킹스칼리지의 계획이 실현되면 영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 간 ‘교육허브 경쟁’은 유럽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부 선진국만의 경쟁도 아니다.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빠른 성장을 보여온 나라들 중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인 교육허브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를 본 나라들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프랑스 인시아드와 미국 명문 듀크대 의대 등이 싱가포르에 캠퍼스와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는 자국의 대표 국립대인 싱가포르국립대(NUS)와 난양이공대(NTU)를 이용해 동남아와 서남아의 우수 인재 영입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대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중동에서도 2000년대 들어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가 교육허브를 놓고 경쟁을 벌여왔다. 두 나라 모두 막대한 ‘오일달러’를 교육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카타르는 셰이카 무자 빈트 나시르 왕대비가 직접 ‘에듀케이션시티(Education City)’를 기획해 조지타운대, 노스웨스턴대, 카네기멜런대, 코넬대 등의 분교를 유치했다. UAE는 두바이 ‘놀리지 빌리지(Knowledge Village)’에 아메리칸대, 미시간주립대, 호주 울런공대 등의 분교를 만들었다. 아부다비에도 뉴욕대 분교를 설립했다. 두 나라 간 경쟁은 중동의 리더십 변화와 탈석유 전략 속에서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도 그동안 국제적인 교육허브가 되려는 노력을 그 나름대로 기울였다. 정부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유명 외국대학을, 주요 대학들은 우수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한국을 성공한 혹은 주목해야 할 교육허브로 꼽는 이들은 별로 없다. 한국의 교육허브 전략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요 대학의 높은 학생수준, 글로벌 정보기술(IT)과 자동차 기업의 본사 소재지, 한류 같은 장점과 비(非)영어권, 북한으로 인한 안보 위험, 대학들의 재정위기 같은 단점들을 살펴본 뒤 우리의 전략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좀더 냉정히는, 교육허브가 한국이 지향할 수 있는 목표인지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교육계에선 2017년을 한국의 국제화 교육이 성년(20년)을 맞이하는 시기라고들 한다. 1997년 모든 수업을 원칙적으로 외국어로 하고, 외국인 학생도 적극 뽑는 국제대학원들이 문을 열었다. 같은 해 말 시작된 외환위기는 대학들에도 경쟁 무대가 세계임을 보여줬다. 이런 시기적 특수성도 교육허브 만들기와 관련된 깊은 고민을 시작할 계기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교육허브#대학교육#교육#유럽교육#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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