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한국어의 구조적 차이 중 하나는 be 동사의 유무다. be 동사는 ‘있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주어와 형용사를 연결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영어는 문장구조 자체에서 형용사를 인식할 수 있다. ‘I am happy’와 ‘I walk’라는 문장에서 시제와 인칭에 따라 변하는 것은 be 동사든 일반 동사든 동사이다. 형용사 happy는 변하지 않는다.
▷한국어 ‘나는 행복하다’와 ‘나는 걷다’에서는 주어와 형용사, 주어와 동사가 모두 직접 연결된다. ‘행복하다’라는 형용사도, ‘걷다’라는 동사도 시제에 따라 어미가 변하기 때문에 문장구조 자체에서 형용사인지 동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내용적으로 구별하지만 언제나 타당한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늙다’를 동사로 분류했다. ‘늙다’는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늙다’는 ‘예쁘게 늙자’ ‘예쁘게 늙어라’와 같은 청유형과 명령형이 가능하다. 반면 형용사 ‘예쁘다’는 ‘예쁘자’ ‘예뻐라’로 변화시켜 사용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늙다’를 동사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건 해명이 쉽지 않은 비대칭성이다.
▷국립국어원은 ‘잘생기다/못생기다’ ‘잘나다/못나다’도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동사로 분류했다. 이 단어들은 ‘잘’ ‘못’이라는 부사와 ‘생기다’ ‘나다’라는 동사가 합쳐진 말로 일부 동사에서처럼 과거형으로 쓰고 현재로 읽는 특징이 있다. 가령 ‘그 녀석 잘생겼다’라고 하지 ‘그 녀석 잘생기다’라고 하지 않는다. 현재형으로 쓰고 현재로 읽는 형용사 ‘예쁘다’와 다르다. 그럼에도 ‘잘생기자’ ‘잘생겨라’ 같은 활용은 없어 완전한 동사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이들 단어를 형용사로 분류할지 동사로 분류할지는 오랜 논란거리다. be 동사가 없어 형용사와 동사를 선험적으로 구별하지 않는 언어이다 보니 그 틈새에서 이런 경계선상의 단어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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