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정치가 우상이 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중국에 간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와대 기자단을 해체하라는 민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행 기자단이 보여준 행태는 청와대의 지향점과 노력을 따르기에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한 이들은 정당한 취재 활동에 대한 부당한 폭력임이 밝혀진 뒤에도 “외교 성과를 망가뜨리고 나라 망신까지 시킨 기자를 징계하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좋아하는 정치인에 관한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들고 싸우는 이들을 제이슨 브레넌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정치철학)는 ‘훌리건(Hooligan)’이라고 했다. 그는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에서 민주사회의 시민을 세 부류로 나눴다.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Hobbit)’, 정치적 지식수준이 높고 분별력 있는 ‘벌컨(Vulcan)’, 그리고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춰 정보를 편식하고 반론을 묵살하는 훌리건이다.

훌리건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듯 정치적 훌리건은 다양한 사람들이 숙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는 민주주의 경기장을 훼방 놓는다. 정치적 광팬들에게 객관적 사실이나 이성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인 ‘문빠’들에게는 ‘반문질(문재인에 반대하는 행동)’이 곧 적폐다.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기자가 폭행당하는 건 “이적 행위”다. “일 잘하는 행정관(탁현민)의 경질에만 관심 있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해임해야 마땅하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뻔한 소리를 했다가 적폐세력이 됐다.

정치적 훌리건들이 한쪽에만 있을 리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진 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취재하던 내외신 기자들은 그 지지자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다. 문 대통령의 방중 행사에 한류 스타들이 참여하자 ‘박사모’ 게시판엔 “박근혜 님은 연예인 대동이 필요 없는 한류 대스타”라는 글이 올라왔다. 훌리건들은 이성적인 대화를 가로막고 정치적 극단화를 조장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사람들, 문재인을 ‘문재앙’으로 고쳐 부르며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큰 목소리에 작지만 합리적인 견해는 묻혀버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치는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칼럼 ‘정치가 당신의 우상이 될 때’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정파성이란 특정 정당의 정치 철학이나 정책에 관한 지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가족 종교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사라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정치를 우상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브룩스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제안을 했다. 민주사회 시민들의 대부분은 호빗이거나 훌리건이라고 진단한 브레넌 교수의 해법은 좀 더 극단적이다. 그는 돌팔이에게 환자를 맡기지 않듯 책임 있는 투표 행위를 할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해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하고 있나. 반대편에 문자 폭탄을 던지는 행위를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으로 해석하는 수준으로는 민주주의의 적인 훌리건들의 난동을 막을 수 없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정치적 훌리건#박사모#박근혜#정치가 당신의 우상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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