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중에는 지난달 수능을 치른 여고생과 어머니, 외할머니 3대가 있었다. 모녀가 팔순의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 함께 센터의 사우나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다른 억척 엄마는 새벽엔 우유와 신문 배달을 하고 낮엔 고교 급식실에서 조리반장으로 일했다. 올해 수시에 합격한 둘째 딸은 영정 앞에서 “1월에 베트남 여행 가자고 했잖아”라고 울부짖었다. 인구 13만여 명의 소도시 제천은 단 하루 사이에 가족과 친지, 친구와 이웃을 잃은 주민들이 적잖아 망연자실한 상태다.
이런 참혹한 사고에 다시 인재(人災)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담하다. 사우나 여탕이 있는 2층에서 숨진 20명 중 11명이 출입구 미닫이문 앞에 엉켜 있었다. 유독가스를 피해 달려갔지만 문을 열지 못한 것이다. 반대편에 비상구가 있었지만 철제 선반이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이 문도 잠겨 있었다. 3층 남탕에서는 고객들이 비상구로 대피해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을 보면 29명 사망이라는 인명 피해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유독가스와 불길 때문에 통유리를 깨 탈출구를 확보할 엄두를 내지 못해 안타깝게 골든타임을 놓쳤다. 빠져나가려고 손에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죽을힘을 다했던 희생자들에게 구조의 손길은 너무 멀었다. 센터 외벽은 값은 싸지만 불이 붙기 쉬운 스티로폼 소재의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돼 한 번 불이 붙자 걷잡을 수 없었다. 지난달 소방안전점검에서 동파됐다는 지적을 받은 밸브를 건물주가 잠가 버려 8층 센터 전체의 스프링클러는 아예 작동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어제 현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노와 함께 오열을 터뜨렸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대응을 반성하며 ‘재난안전관리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체제 구축’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내세웠지만 구호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형 참사가 터지면 항상 안전 미비가 드러나고 정치인이 찾아가 위로한 뒤 긴급대책을 발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나 끊을 수 있을까.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1년간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등으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숨졌다. 정권 교체기에 나타날 수 있는 기강 해이가 이런 사고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안전 시스템,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연말연시에 대형사고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전국 30층 이상 고층건물 135개동이 제천 스포츠센터 같은 외장재로 마감된 잠재적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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